전지윤
김정호 님이 <레디앙>에 기고한 중국 자쓰(제이식) 노동자 투쟁과 노학연대에 대한 글들을 봤다.(http://www.redian.org/archive/129800, http://www.redian.org/archive/129963) 김정호 님은 대단히 성실하고 열정적인 동지이고, 비정규직 투쟁 등에 헌신적으로 연대하고 있다고 알고 있다. 또 오래동안 써온 수많은 글들에서 흥미있고 타당한 내용도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이번 글들을 보면서도, 혹시 내가 서방 정부나 언론의 일방적 이야기만 듣고 섣불리 판단한 것은 아닌지, 또 우리의 주장이 ‘반공주의’로 곡해되거나 악용될 측면은 없는지 항상 주의를 기울여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방 주류언론은 중립적이거나 객관적인 주체가 아니며, 최근 트럼프도 ‘반사회주의’ 선동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어떤 나라에 민주주의, 인권에 문제가 있더라도 그것이 서방의 제국주의적 개입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될 순 없고, 우리도 그것을 편드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
더구나 한국에서 좌파는 중국보다는 미국을 편드는 것처럼 보여지는 것을 더 경계해야 한다. 미국은 여전히 세계 최강국이고 한국은 친미 전통이 강하기 때문이다. 중국식 ‘사회주의’를 지지한다는 이유로 김정호님의 의견을 단순히 기각하거나 매도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한편, 중국총공회가 아무리 국가로부터 독립적이지 않더라도 (한국노총도 그랬듯이) 부분적으로 노동자를 대변하거나 중재하는 구실을 할 가능성은 충분히 열어둬야 한다는 것을 김정호님의 글을 보면서 다시 상기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감안해도 김정호님의 이번 글들은 동의하기 너무 어렵다. 먼저 중국 관영 신화통신의 기사를 번역한 것을 보면, ‘불법’과 ‘업무 방해’를 저질렀다고 노동자와 활동가들을 비난하고 있다. 그러면서 열거한 행위들은 “집회를 열고 구호를 외치면서”, “석방하라고 외치고 노래를 불러”, “유인물을 나눠 주었다”, “파출소에서 소란을 피우는” 등이다.
이런 행동들이 “국가기관을 타격”하며 “사회질서와 일반 서민생활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줬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어떤 저항도 “이성적이고 합법화”된 방식으로 해야 하며 “누구도 법 위에 군림하려고 해선 안 된다”고 질타한다.
도대체 정당한 권리나 구속된 동지의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를 하면서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하는게 무슨 대단한 ‘불법’이고 ‘사회질서와 국가기관’까지 위협한단 말인가. 이 모든 것은 한국에서 권위주의 정권이 노동자와 학생들의 집회, 시위, 정부 비판 등을 억누르고 탄압하면서 펼쳤던 논리들과 너무나 유사하게 들린다.
한국의 정권들은 이런 식으로 저항을 짓밟으며 항상 ‘북한과 연계된 좌경세력이 배후에 있다’는 논리를 폈었다. 이명박근혜 정부도 저항에 직면해 언제나 ‘외부세력의 개입’을 문제삼았다. 아니나 다를까 신화통신의 글은 “노동자들의 이익 추구 배후에 감춰진 진상”이라며 “‘권리수호’를 빌미로 무언가 큰 사건을 일으키려는 세력”이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김정호님도 “외부세력의 개입”을 언급하며 “서구 자본주의 진영의 개입”을 말한다. 노동자들의 투쟁에 연대하는 활동가들을 ‘서방과 연결된 외부세력’으로 몰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왜 불순한 ‘외부세력’인지의 근거는 거의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단지 “정식으로 등록하지 않”았고, “노동자파업을 선동하고 조직”했으며 “서구 비정부조직(NGO)이 지원”했다는 정도다.
그러나 이번 자쓰 투쟁에 연대한 주된 세력은 중국 대학의 마르크스주의 학회나 홍콩의 저명한 중국 노동운동 지원 단체인 ‘중국노동회보’(China Labour Bulletin) 등이었다. 미국에서 연대한 곳도 ‘레이버노트’(Labor Note)같은 좌파단체였다. 이들 모두는 친서방은커녕 반자본주의적 입장에서 서방 강대국과 다국적 기업을 비판하며 국제적 노동운동의 소식을 전하고 연대해 왔다. 지난 1월말 한국의 중국대사관 앞에서 열린 자쓰 연대 집회에 참석했던 것도 무슨 ‘친서방 NGO’들이 아니고 한국의 급진좌파들이었다.
노동자들은 중국사회에 만족하는데 ‘외부세력’이 문제를 일으킨다는 관점 때문인지, 더 나아가 김정호님은 중국이 노동자를 탄압하지도 않고 “별반 파업과 노동 분규가 일어나지 않는” 나라라고 말한다. 이것은 더욱 더 공감하거나 동의하기 어렵다.
먼저 이 과정에서 폭스콘을 대단하지 않은 에피소드처럼 취급하는 것부터 그렇다. 노동자 수십 명이 집단 투신자살한 폭스콘은 중국이 다국적기업의 하청업체에서 벌어지는 살인적 노동조건과 억압에 책임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 대표적이고 충격적인 사례다.
그것뿐이 아니다. 중국이 시장개혁을 하는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민영화 과정에서 대량해고된 노동자들, 도시 재개발 과정에서 쫓겨난 철거민,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에 시달리는 농민공, 토지 강탈과 환경 파괴에 고통받은 농민, 티베트와 신장 등에서 억압받는 소수민족, 베이징 하늘을 뒤덮고 있는 유독한 스모그 등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고, 서방 언론이 거짓으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 과정에서 서방강대국과 다국적 기업은 중국정권의 공모자였다. 이 때문에 중국에서 ‘집단행동’은 1990대초에서 2000년대 초까지 거의 6배 가까이 늘었고, 2010년대 들어서는 매년 십만 건 이상 벌어져 왔다는 것은 중국 정부의 공식통계나 관계자들의 발언에서도 인정되는 사실이다.
파업도 꾸준히 늘어왔을 뿐 아니라 2010년 남부지역 자동차 노동자 파업, 2014년에 광둥성에서 대규모 동맹파업 등은 중국 노동운동 역사에 남았다. 김정호님이 언급한 중국 정부와 총공회의 변화된 태도나 노동자들에게 보장된 몇 가지 권리들은 바로 이런 투쟁 끝에 쟁취된 것이지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니다.
물론 중국 정부는 양보만 하지 않았다. 중국 정부는 국방비에 맞먹는 치안유지비를 쓰며 인민해방군 주력부대를 인구 밀집지역에 배치해 저항이 더 확대되고, 공산당 지배에 대한 도전으로 정치적으로 일반화될 가능성을 차단하려 해 왔다.(박노자 선생님이 직접 목격한 것을 참고해 볼 수 있다. https://www.anotherworld.kr/590) 인권변호사, 여성운동가, 노동운동가를 검거해 ‘국가전복’ 혐의로 처벌해 왔다. 2011년 아랍혁명 때 중국정부가 ‘재스민’ 단어를 금지어로 지정하며 그 파장을 걱정했던 것도 유명하다.
따라서 김정호님이 친서방 외신들의 보도에 휘둘리지 않으려는 것은 타당하고 이해할만 하지만, 중국 정부와 관영언론들에만 너무 의존하는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다. 친서방 언론도 아니고, 중국 관영언론도 아니고 독립적인 좌파 언론과 연구자, 활동가들의 분석에도 귀를 기울였으면 좋겠다.(https://www.anotherworld.kr/255, https://www.anotherworld.kr/636) 예컨대 중국의 사회학자이자 노동운동가인 뤼투의 <중국 신노동자의 미래>같은 책은 한국에도 번역돼 있다.
분명 중국같은 사회를 서방의 시각에서 분석하는 ‘외재적 관점’은 문제가 있다. 그래서 그런 국가와 체제 내부의 논리로 그 사회를 분석해야 한다는 ‘내재적 관점’의 필요가 제기돼 왔다. 하지만 이것은 그 사회 지배층의 정당화 논리가 되기 쉽다. 따라서 정말 필요한 것은 ‘밖에서’ 보는 것과, ‘안에서’ 보는 것의 한계를 넘어서 ‘밑에서’ 보는 것이다.
어느 시대나 나라든 억압과 차별에 맞서며 자유와 해방, 인간다운 삶과 더 나은 세상을 꿈꾸며 저항하는 기층민중의 관점에서 역사와 사회를 바라보는 것이다. 그럴 때 “세계경제성장의 동력이자, 한국의 최대 수출시장이란 점 때문”에 중국이 “한국의 노동운동과 진보진영의 우군”이라는 말은 나오기 어렵다. 이미 민영기업이 중국 경제 전체의 60%를 차지하고 있고, 중국 국영기업 상하이차도 쌍용차 대량해고 당시 ‘먹튀’ 공범이었는데 “사회주의와 시장경제의 성공적인 결합 모델”이라며 중국을 찬양하기도 어렵다.
엄혹한 상황 속에서도 한국 노동운동과 노학연대의 경험에서 배우겠다며 전태일 평전을 읽으며 눈시울을 적시며 주먹을 불끈 쥐고 있을 노동자와 학생들이야말로 ‘한국의 노동운동과 진보진영의 우군’일 것이다. 그들에게 더 힘이 돼주지는 못하더라도, 힘이 더 빠지게 하는 이야기는 조심해야 하지 않을까.
(기사 등록 2019.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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