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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과 주장

[박노자] '폐쇄된 국경'이라는 현상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20. 3. 3.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사는 러시아계 한국인 교육 노동자/연구 노동자라고 본인을 소개하는 박노자는 <러시아 혁명사 강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우승열패의 신화>, <나를 배반한 역사> 등 많은 책을 썼다. 박노자 본인이 운영하는 블로그에 실렸던 글(https://blog.naver.com/vladimir_tikhonov)을 다시 옮겨서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준 것에 정말 감사드린다.]

 

 


저는 지금 허공에 걸려 있는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내주 월요일이 특강 건 등의 일로 제 고향 레닌그라드 (상트-페테르부르그)로 가기로 돼 있어 표도 구해놓았는데, 어제 뜻밖에 러시아의 정부가 '한국으로부터의 입국의 제한에 대하여'라는 지침서를 발표했습니다. 그 지침서를 보면, 러어의 모어민인 저마저도 도대체 이게 '한국으로부터의 승객'에 대한 입국 통제인지 아니면 저 같이 한국 여권을 가지고 제3국에서 입국하려는 사람들까지 못들어오게 하는 것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고향은 고향이고 학생들이 가디리는 곳이고 하기에, 일단 '사행의 마음'(?)을 품고 비행기를 타볼까 싶기도 합니다. 최악의 경우에는 오슬로로 강제 송환시키는 등 비행기삯을 낭비하겠지만, 거기까지 각오하고 한 번 가볼까 합니다. 지금 제 코 앞에 닫힐지도 모를 '국경'을 생각하면서 한 번 제 단상을 정리해볼까 합니다.

 

사실 유행병 통제 수단으로서의 '외국인 입국 제한'은 실효성이 극도로 안좋은 조치입니다. 러시아 속담에는 '참새를 죽이기 위해 대포를 쏜다'는 말이 있는데, 목적에 전혀 상응하지 않는, 매우 과한 수단을 쓴다는 뜻입니다. '외국인 입국 제한'은 바로 그런 것입니다. 예컨대 수십만 명이 청와대에 청원한 '중국인 입국 금지'를 생각해보지요. 중국에서는 확진자가 8만이 된다 해도 이게 어차피 그 나라 총인구의 약 2만분의 1에 불과할 겁니다. 더군다나 코로나 바이러스의 발원지인 무한 등이 이미 봉쇄된 상태이기에 거기로부터의 보균자들이 한국으로 올 가능성도 없지요.

 

아무리 '잠재적인 보균자'들의 숫자를 높이 잡아도 중국으로부터의 입국자의 0,01%도 안 될 겁니다. 0,01%의 입국을 막기 위해서 나머지 99,99%'여행할 권리'를 제한시키고, 거기에다가 이 99,99%가 국내에 들어와서 묵을 호텔 직원들, 밥 먹을 식당들의 직원들, 물건을 살 가게들의 직원들의 '밥벌이'까지 망가지게 만드는 것은... 이건 '대포로 참새를 쏘는 격'이 아니고서 과연 무엇입니까? 굳이 '중국으로부터의 보균자의 입국'을 완전하게 봉쇄시킨다면 아예 중국에 여행한 자국민들의 입국까지도 통제해야 하는데, 이건 법적으로 불가능할 겁니다. 이 상황에서 중국 국적자의 입국만을 제한시킨다는 건, 도대체 그 실효성이 무엇입니까?

 

제가 걸린 러시아의 '한국인 입국 제한'도 생각해보면 우스운 일입니다. 한국인의 절반이 사는, 그리고 대부분의 여행자들을 배출하는 수도권의 확진자는 현재로서 100명 정도입니다. 그러니까 통계적으로는, 러시아로 주마다 향하는 수천 명의 한국인 중에서는 보균자 한 사람이 낄까 말까, 이런 수준인데, 과연 그 한 사람의 입국을 막기 위해서 수천, 수만 명의 '이동할 권리'를 제한시키는 것은 합리적인 조치인가요? 휴대폰에 자기 검진 앱을 다운 받게 하여, 매일 자기 검진을 하게끔 지시를 하고 국경 통과시에 한 번 검역하면 될 일이 아닙니까? 제가 몇 주 전에 서울에서 일주일을 보냈는데, 제가 그 때 묵은 호텔에서 모든 투숙객들의 체온을 출입할 때마다 확인하곤 했습니다. 사실, 여행객 사이의 병 통제 차원에서는 이 정도의 초치들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싶은데, 중국인, 한국인, 인제는 아예 이란인까지 입국 제한시키는 나라들의 숫자가 계속 늘어나기에 어이없기만 합니다.

 

득보다 경제적으로도 인권적으로 ('이동'도 하나의 권리입니다. 국제 이동을 포함해서요) 실이 더 많은 게 각종 '입국 금지' 조치들인데, 왜 나라마다 서둘러 이런 조치들을 단행하는 것이죠? 사실 답은 '유행병 통제' 차원은 아니고 정치적인 차원에 있다고 봐야 합니다. 원자화될 대로 원자화된, 각자가 혼자 도생을 하고 다들 적자생존의 경쟁에 내몰린 신자유주의 말기의 세계에서는 국민/인민 집단을 결속시키는 집단 공유의 '정서'로서는 타자에 대한 공포는 최고입니다. 건물주와 임대인, 정규직과 비정규직, 나아가서 남성과 여성까지도 각자가 생각하는 '이해관계'는 서로 충돌하기가 아주 쉽지만, '타자'가 함의하는 그 미지의 '위협' 앞에서는 착취자와 피착취자, 치자와 피치자, 불안노동자와 관리자들은 그나마 '같이 뭉치기'란 가능해집니다.

 

그래서 인터넷과 SNS으로 완벽하게 연결된, 한 뉴스가 순식간에 지구촌을 확 도는 이 세상에서는 역설적으로는 가장 잘 팔리는 정치적인 '상품'으로 각종의 배외주의가 지금 각국 정치 시장들을 석권하는 겁니다. 면대면의 자연스러운 공동체, 일터 공동체나 이웃 공동체가 파괴되어 신자유주의적인 소외가 팽배할수록 타자에 대한 공포를 그 근거로 하는, 그리고 너무나 부자연스로운 '국경 공동체'가 더더욱 더 기승을 부리는 것입니다. 맑스의 논리대로, 결국 '열굴 모를 중국/한국/이란인 보균자'에 대한 공포란 이웃, 동료, 나 자신, 그리고 생산관계로부터의 '소외'의 결과지요. 정객, 특히 권위주의적인 보수파 정객들이 그런 공포를 이용해가면서 확대재생산시키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입니다.

 

러시아가 저의 입국을 허할는지 저는 잘 모릅니다. 불허되어 강제 재출국, 즉 돌아가는 비행기에 강제로 다스 탑승하게 되면, 국경 수비대 아저씨들에게 '코로나보다 타자에 대한 공포의 바이러스가 더 무섭다'는 조언(?)을 남기고 성과없이 돌아올까 합니다. 그런데 이번 난리로 어쩌면 고향도 못 가게 생길 것 같아서... 좀 슬프네요.


(기사 등록 20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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