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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과 주장

[박노자] 문제는 이제부터다!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20. 5. 17.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사는 러시아계 한국인 교육 노동자/연구 노동자라고 본인을 소개하는 박노자는 <러시아 혁명사 강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우승열패의 신화>, <나를 배반한 역사> 등 많은 책을 썼다. 박노자 본인이 운영하는 블로그에 실렸던 글(https://blog.naver.com/vladimir_tikhonov)을 다시 옮겨서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준 것에 정말 감사드린다.]

 



국내 매체도 상당 부분의 외신들도 한국 방역의 성공을 칭찬하고 '국제 위상 강화'부터 이야기하지만, 우리는 자애자중을 한다 해도 이미 모든 게 이루어진 것처럼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코로나는 짧으면 1, 길면 1~2년만에 백신까지 개발되어서 어떻게든 해결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코로나가 촉매제가 되어 내파된 세계의 '경제'입니다. 코로나는 촉매제 역할을 했지만, 내파된 이유는 그것보다 훨씬 근본적입니다.

 

신자유주의는 단기 수익의 차원에서 1970년대말에 실감됐던 기업 수익성 위기를 해결한 듯한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장기적으로는 문제를 더 키운 겁니다. 영미권부터 시작해서 신자유주의가 도입돼 주요 기업들의 주주 배당금이 늘어나고 주가가 올랐지만, 그 뒤에 있었던 것은 노동자 임금의 억제이었습니다. 내수의 위축을 은행대출 증가, 모기지론 대출 증가로 커버해야 했는데, 결국 그렇게 해서 부실 모기지론으로 2008년 금융위기가 일어나고, 그 위기 수습하기 위해 엄청난 양의 화폐가 추가 발행되고 추가 국채가 발행됐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자금은 결국 증시 투기로 들어가고, 증시에서 커다란 버블을 키웠습니다. 그러다가 코로나 위기로 이 버블이 꺼지고 세계 증시들 동시 폭락되고, 이제는 본격적 세계 대공황이 시작됐습니다. 궁극적으로는 과잉생산과 과잉투자, 단기적 수익에의 올인과 노동자 임금 억제, 과소소비, 거기에 따른 가계빚 등의 채무 증가로 생긴 '부실'이 만든 재앙입니다.

 

코로나는 1~2년 가겠지만, 대공황은 훨씬 오래 갑니다. 1929년 세계 대공황을 '해결'해준 것은 제2차 세계대전 때의 전시 특수이었습니다. 우리는 당연히 그런 '해결'을 원하지 않는데, 좌우간 적어도 7~10년 동안 세계 시장이 불안하고 공급 과잉과 수요 부족으로 진통을 겪으리라고 봐야 할 셈입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최악의 위기는 1997년 이후 IMF 위기지만, 사실 인제부터 겪을 위기는 그 때보다 훨씬 장기적이며 심각할 수 있습니다.

 

그 때의 위기는 신흥시장 위기이었고 중국의 성장은 지속됐지만, 인제는 범세계적 위기고 한국의 주된 수출 시장인 중국도 성장둔화, 0~1% 대 저성장을 경험할 셈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제부터 직면할 대재앙은 사실 여태까지의 한국사에 정확한 전례 자체가 없는 것이죠. 1929년 대공황은 식민지 조선을 강타했지만, 2년이 지나 일제의 만주침략으로 '만주 특수'가 생기고, 그다음에 지속적으로 중국 침략으로 조선이 일제의 병참기지가 되어 식민지형 공업화를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로서는 참고될 만한 경험은 아니라는 거죠.

 

참고될 만한 경험이라면 물론 1930년대 루즈벨트의 '뉴딜'일 것입니다. 결국 친환경 식으로 이 뉴딜을 재단장하여 벤치마킹해야 하겠지만, 사실 미국 경제와 한국 경제 사이의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미국은 내수형 경제지만, 한국의 무역의존률이 80%인 만큼 전형적 수출형 경제입니다. 그 만큼 앞으로 세계 시장의 부진으로 인항 타격이 클 것입니다. 거기에다가 한국 경제의 또 다른 두 가지 특징은 이중 구조와 자영업 비율이 매우 높다는 것입니다. -하청 수직 구조에서 불황이면 하청기업부터 감원이 진행되고, 또 불황마다 자영업자의 줄도산이 이루어집니다.

 

결국 앞으로 대한민국의 주된 과제는, 사회가 하청/중소 기업 감원/도산의 피해자와 자영업 도산의 피해자들의 생계를 어떻게 해결하느냐 일 것입니다. 가장 합리적인 방법은, 회생 능력이 있는 기업이라면 국가가 고용유지지원금을 주어가면서 해고를 최대한 예방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도산이나 해고가 발생되면 일단 자영업자까지 포함해서 기본소득이든 보편적이고 무기한의 실업수당이든 국가가 모든 피해자들의 생계를 무조건 책임져야 합니다.

 

뉴딜형 정책은 예산지출을 늘리는 정책입니다. 국가가 돈을 써가면서 시장을 대체해 내수를 살리는 것이죠. 사실 어차피 대대적인 국가의 경제 개입이 불가피하면 이참에 한국이 여태까지 해결하지 못한 두 가지의 문제, 즉 무상 의료와 무상 교육을 해결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문 정권의 애당초 계획은 2021년까지 국민의료보험 보장성을 70%로 올린다는 것이었는데, 차라리 '국민의료보험 보장성 100% 달성의 5개년계획'이라도 만들어서 실행하는 게 훨씬 미래지향적입니다.

 

어차피 앞으로 대공황으로 가난해질 수밖에 없는 다수의 한국인에게는 치료 값까지 내라고 하는 게 무리일 것입니다. 그리고 적어도 국공립대학은 등록금을 최소화시키거나 장기적으로는 무료 학습으로 가야 할 겁니다. 다수가 다 가난해지고, 졸업생들의 취업 전망도 대단히 어두운 상황에서 학습이라도 사회적 권리가 돼야 합니다. 이 한국형 뉴딜을 위해 세수를 많이 늘려야 하겠지만, 최고세율 인상과 (이명박근혜 적폐정권이 잘못 내린) 법인세 인상, 임대료 소득에 대한 세율 인상과 종부세 인상, 그리고 추가 국채 발행으로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전화위복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잘 하면 이 대공황을 기회 삼아 한국에서 공공성이 높은 사회, 한국형 복지 국가를 공황 극복 과정에서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전지구적 차원에서는 아예 자본주의 극복으로 가야 하겠지만, 적어도 복지국가 정책을 통해 고장난 자본주의가 한국민에 끼칠 피해라도 줄여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대공황 대책이 실패되면... 정권은 다시 극우들에게 넘어가고, 그들의 실책은 결국 또 다시 다수에게는 새로운 피해를 입힐 것입니다.


 (기사 등록 202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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