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벨라미 포스터John Bellamy Foster는 얼마전 생태사회주의 사상가들의 계보학에 관한 저서인 <자연의 귀환>Return of Nature을 출판했다. 이것을 계기로 마르크스의 사망에서부터 주요 생태사회주의 사상가들이 걸어온 길, 그의 새 책과 마르크스의 생태학의 관계, 현재 마르크스주의 생태 사상의 가장 두드러진 논쟁 등에 대해 이야기한 인터뷰이다. 존 벨라미 포스터는 오리건 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서 미국의 사회주의 잡지 <먼슬리 리뷰: Monthly Review>의 편집자이다. 그는 여러 권의 정치경제학, 제국주의 이론과 관련한 책의 저자이며 무엇보다 마르크스주의 생태학에 관한 이론적 기여와 저술로 유명하다. 한국에도 <마르크스의 생태학>, <환경주의자가 알아야 할 자본주의의 모든 것>, <생태계의 파괴자 자본주의>, <환경과 경제의 작은 역사>, <생태혁명> 등이 번역돼 있다. 비록 <자연의 귀환>이 한국에 출판된 것은 아니지만 기후 위기 시대에 생태사회주의에 대한 더 심도깊은 논의와 고민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해서 이 글을 번역해 소개한다. 글이 매우 길고 또 다소 복잡하고 이론적이어서 읽기가 어려운데, 두 번에 나누어 싣는다. 이 글은 1편이다.(번역: 두견)
출처: https://monthlyreview.org/2020/12/01/the-return-of-nature-and-marxs-ecology
* 마르크스의 생태학에서 당신은 마르크스주의 안팎에서 마르크스와 생태학 사이의 관계에 대한 몇 가지 매우 확립된 가정을 반박했다. 즉, ‘마르크스의 저작들에 나타난 생태학적 사고는 주변적이었다. 그의 몇 안 되는 생태학적 통찰력은 그의 초기 작업에서 대부분(전적으로는 아니더라도) 발견되었다. 그는 진보에 대한 프로메테우스적 견해[즉, 생산력중심적 관점]를 가졌고, 기술과 생산의 발달이 사회와 자연과의 모순에 대한 해결책이라고 제시했으며, 환경에 대해 인류가 야기한 영향에 대한 진정한 과학적 관심을 보여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신의 연구는 다른 사람들의 것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가정들에 이의를 제기했고 그것과 관련된 많은 패러다임을 바꾸었다. 당신은 이러한 생각들이 현재의 논쟁에서 지속된다고 생각하는가?
영어권 국가들의 사회주의자 및 생태학계 내에서, 그리고 실제로 대부분의 세계에서 생태학에 대한 마르크스에 대한 이러한 초기 비판은 이제 모두 그릇된 것이 입증된 것으로 나는 인식하고 있다. 그것들은 사실적 근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생태사회주의의 발전과 자본주의에 의해 생성된 생태적 파탄에 대한 모든 사회과학적 처방에 점점 더 기본이 되어온 마르크스의 매우 강력한 생태학적 조치와 완전히 모순된다.
이것은 마르크스의 신진대사 균열metabolic rift 이론의 광범위하고 성장하는 영향력에서 특히 분명하며, 이 이론은 계속 확장되고 있으며 현재 거의 모든 현재 생태 문제에 적용되고 있다. 영어권 밖에서는 여전히 초기의 오해들에 부딪히기도 하는데, 의심할 여지없이 지금까지 가장 중요한 마르크스의 저작들이 영어로 되어 있었고 이 중 많은 부분이 아직 번역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초기적 비판들을 단순히 내 작업 때문만이 아니라 폴 버켓Paul Burkett의 <마르크스와 자연>, 사이토 코헤이Saito Kohei의 <칼 마르크스의 생태사회주의> 등의 많은 것들 때문에 거의 보편적으로 쓸모없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좌파 중 누구도 마르크스를 다른 모든 것보다 산업화를 촉진한다는 의미에서 프로메테우스적 사상가로 볼 만큼 단순하지 않다.
이제 과학과 자연에 대한 유물론적 개념이 어떻게 그의 생각에 들어갔는지에 대한 광범위한 이해가 있으며, ‘마르크스-엥겔스 전집’ 프로젝트에서 그의 과학적/생태학적 발췌 노트 중 일부를 출판함으로써 이러한 인식이 강화되었다. 따라서 나는 마르크스의 생태학적 분석이 그의 사상에서 어떻게 든 주변부적이라는 견해가 오늘날 영어권 세계의 사회주의자들 사이에서 많은 신빙성을 얻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그것은 다른 모든 곳에서 빠르게 후퇴하고 있다. 생태적 마르크스주의는 유럽, 라틴 아메리카, 중국, 남아프리카, 중동, 사실상 거의 모든 곳에서 매우 큰 주제이다.
마르크스의 생태학적 분석이 주변적이라고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생태를 구성하는 것에 대한 극히 편협하고 자기 파괴적인 정의를 채택하는 것뿐이다. 더욱이 과학에서 가장 혁명적이고 첨단적인 것으로 드러나는 것은 사상가의 가장 "주변적인" 통찰력인 경우가 많다. 왜 많은 사람들이 일찍이 마르크스가 생태학을 소홀히 했다고 확신하게 되었을까? 내 생각에 가장 직접적인 대답은 대부분의 사회주의자들이 마르크스에 있는 생태학적 분석을 단순히 간과했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규정된 방식으로 마르크스의 같은 내용을 읽었으며 당시에는 부차적이며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지정된 것은 건너뛰었다.
나는 몇 년 전에 마르크스에 생태학적 논의가 없다고 말한 사람과 이야기한 것을 기억한다. 나는 그가 <자본> 3권에서 농업과 지대에 관한 장을 읽은 적이 있는지 물었다. 그는 그렇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나는 “당신이 만약 마르크스가 농업과 토양을 조사한 <자본>의 부분을 읽지 않았다면 어떻게 마르크스가 생태학적 문제를 다루지 않았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를 물었다. 그는 대답이 없었다. 다른 문제들은 번역 때문이었다. <자본>의 영어 번역본에서는 마르크스가 초기에 사용한 Stoffwechsel, 즉 신진대사는 ‘물질적 교환’이나 ‘상호교환’으로 번역되어 이해를 돕기보다는 오히려 방해했다.
그러나 더 깊은 이유도 있었는데, 예를 들어 마르크스가 말하는 유물론 자체가 의미하는 바를 간과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것은 유물론적 역사 개념뿐만 아니라 더 깊이 있게는 자연에 대한 유물론적 개념까지 포괄하는 것이었다. 마르크스의 생태학적 비판에서 중요한 것은 그것이 자본주의에 대한 그의 정치경제학적 비판과 일체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사실 어느 쪽도 다른 쪽 없이는 의미가 없다고 주장할 수 있다. 자본주의 하에서 교환가치에 대한 마르크스의 비판은 자연물질적 조건과 관련된 사용가치에 대한 비판을 빼면 의미가 없다.
역사에 대한 유물론적 개념은 그것을 자연에 대한 유물론적 개념과 관련하여 보지 않는 한 의미가 없다. 노동의 소외는 자연의 소외를 떠나서는 볼 수 없다. 자연에 대한 착취는 자본이 "자연이 주는 선물"을 몰수하는 데 기반을 두고 있다. 이스트반 메자로스István Mészáros가 <마르크스의 소외 이론>에서 설명했듯이 인간을 자연의 자기 매개적 존재로 정의하는 마르크스의 정의는 인간과 자연의 신진대사로서의 노동 과정 개념에 기초하고 있다. 노동 착취를 강화하는 수단으로서의 과학은 자연의 지배를 추구하는 과학과 분리될 수 없다.
사회적 신진대사에 대한 마르크스의 개념은 신진대사 균열의 문제와 분리될 수 없다. 등등. 이러한 것들은 마르크스에게서 실제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생태학적 문제를 무시하거나 관념론적, 기계론적 또는 이원론적 관점들을 채택하여 정치경제학 비판의 실제 물질적 기초를 강탈한 후기 좌파 사상가들에 의해 서로 분리되었다.
* 프로메테우스주의와 관련하여, 당신은 프로메테우스에 대한 마르크스의 성찰이 (로마 시인 루크레티우스Lucretius 뿐만 아니라) 에피쿠로스Epicurus에 대한 그 자신의 학문적 연구와 관련하여 어떻게 읽혀져야 하는지를 당신의 작업으로 보여주었고, 따라서 진보에 대한 맹목적인 옹호가 아니라 계몽주의에 대한 세속적 지식과 연결된 것으로 해석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러나 프로메테우스주의라는 용어의 지배적인 사용은 마르크스주의 문헌에서도 꽤 일반적으로 남아 있으며, 이는 마르크스를 그들의 목적을 위해 되찾는 특정 가속주의accelerationist[급진적 사회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 자본주의 체제를 번영시키거나 기술사회적 과정을 확장, 가속시켜야 한다는 관점] 및 기술 물신주의 경향에 여지를 준다. 이 개념은 적어도 마르크스와 그의 유물론적 사상과 관련하여 더 효과적으로 도전받아야 하는가?
이것은 매우 복잡한 문제입니다. 마르크스가 프로메테우스를 칭찬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물론 그는 아이스킬로스Aeschylus의 <포박된 프로메테우스>에 대한 열렬한 지지자였으며 자주 다시 읽었다. 그의 논문에서 그는 에피쿠로스를 프로메테우스에 비유했다. 그리고 마르크스 자신은 심지어 마르크스와 프레드리히 엥겔스의 선집 1권에 나오는 유명한 이미지에서 <라인 신문>Rheinische Zeitung이 탄압받는 맥락에서 프로메테우스로 형상화되었다.
마르크스주의 내부와 외부의 다양한 비평가들은 마르크스의 견해를 프로메테우스주의로 특징짓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특히 마르크스가 사회의 주요 목표로서 극단적인 생산력주의를 보였다고 주장했다. 마르크스가 인간의 사회(그리고 생태학적) 관계보다 산업화를 우선시한다는 어떠한 증거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비평가들은 단순히 증거 없이 이러한 공통적 연관성을 이용하여 그들의 주장을 펴는 방법으로 프로메테우스적이라는 개념을 사용했다.
그러나, 이것은 꽤 많은 면에서 왜곡이었다. 그리스 신화에서, 타이탄인 프로메테우스는 인류에게 불을 줌으로써 제우스에 저항했다. 불은 물론 두 가지 명백한 특성이 있다. 하나는 빛이고, 다른 하나는 에너지 또는 힘이다. 루크레티우스의 그리스 신화 해석에서 에피쿠로스는 프로메테우스적인 의미에서 빛이나 지식을 가져다주는 존재로 취급되었고, 볼테르Voltaire가 계몽주의 개념을 받아들인 것은 이로부터였다.
마르크스 자신이 빛의 전달자인 프로메테우스와 같다고 에피쿠로스를 칭송하고, 그를 고대의 계몽주의 인물로 칭송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었다. 게다가, 아이스킬로스의 포박된 프로메테우스에 대한 마르크스의 언급은 항상 올림피아의 신들에 대항하는 혁명적인 주인공으로서의 프로메테우스의 역할을 강조했다. 계몽주의 시대에는 프로메테우스 신화가 에너지나 생산에 관한 것이 아니라 계몽주의로 비쳐진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자본주의, 자연, 사회주의>에서 초기에 나와 함께 일했던 위대한 생태사회주의자이인 월트 쉬즈비Walt Sheasby는 1999년 3월에 내가 편집자이기도 했던 <조직과 환경> 저널에 특별 기사를 기고하여 프로메테우스주의와 프로메테우스적 신화의 개념이 19세기까지 주로 이러한 계몽주의적 의미로 사용되었다는 것을 결정적으로 확립했다.
언제부터 용도가 바뀌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확실히, 메리 셸리Mary Shelley의 <프랑켄슈타인; 또는 현대 프로메테우스>와 피에르 조셉 프루동Pierre-Joseph Proudhon의 <빈곤의 철학>은 프로메테우스주의가 산업 혁명으로 상징되는 산업주의와 기계류를 의미하게 된 변화를 대표한다. 여기서 프로메테우스는 기계적인 힘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였다. 마르크스가 프루동의 기계론적 프로메테우스주의를 직접적으로 취하여 <철학의 빈곤>에서 그러한 모든 개념을 공격했다는 것은 흥미롭다.
그러나 프로메테우스 신화는 고대 그리스인들이 결코 상상할 수 없었던 산업화의 이야기로 재탄생되었고,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마르크스와 프로메테우스를 공통적으로 동일시하는 것은 따라서 생태학적 근거에서 그를 탓하는 하나의 방법이 되었다. 흥미롭게도, 레젝 콜라코프스키Leszek Kolakowski, 안서니 기든스Anthony Giddens, 테드 벤튼Ted Benton, 조엘 코벨Joel Kovel과 같은 인물에서 당신이 볼 수 있는 마르크스가 프로메테우스주의적이라는 비난은 다른 사상가들이 아닌 전적으로 마르크스를 직접 겨냥한 것이며, 이것은 그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보여 준다.
마르크스가 산업화를 자신의 목적으로 미화한다는 의미에서 프로메테우스적이었다는 증거를 찾는 사람은 누구든 가장 가까운 것으로 <공산주의 선언>의 첫 부분에서 부르주아지에 대한 그의 칭찬을 말하지만, 이것은 단순히 부르주아지에 대한 그의 비판의 서곡에 불과했다. 그리하여 그는 몇 페이지 후에 방향을 돌려 부르주아 질서의 모든 모순을 설명하면서 마법사의 견습생, 생태학적 조건들(도시와 지역), 경기 순환들, 그리고 물론 자본주의의 무덤 파는 사람으로 프롤레타리아트를 언급하였다. 사실 마르크스가 자유롭고 지속가능한 인간 개발이 아닌 그 자체적 목표로서 산업화를 내세우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설명하는 것은 시간이 걸리고, 내가 내 작품에서 다양한 경우의 이 모든 요점들을 제기했다. 하지만, 만약 그것이 의미하는 것이 산업, 기술, 그리고 생산력주의에 대한 그 자체적 목표로서 숭배이거나 환경에 대한 극단적 기계론적 믿음이라면, 마르크스는 프로메테우스주의적 사상가가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러한 구체적인 개념에서 신화로 인한 혼란을 제외하면 의심의 여지가 없다.
* <마르크스의 생태학> 이후 20년 동안 신진대사 균열 학파의 광범위한 작업은 마르크스주의와 생태학에 대한 오늘날의 논쟁을 변화시켰다. 그 당시의 맥락과 현재의 맥락 사이의 연속성과 변화는 무엇인가?
토론과 논쟁에는 몇 가지 다른 가닥이 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지적했듯이, 현재의 지구적 생태 위기와 이에 대응하는 혁명적인 생태사회주의 운동을 어떻게 건설할 것인가에 대한 이해의 한 방법으로서 신진대사의 균열에 대한 방대한 연구이다. 기본적으로, 상황을 변화시킨 것은 사회과학뿐만 아니라 자연과학에서도 매우 다양한 영역에 빛을 비추는 마르크주의 생태학 자체의 놀라운 부상이다. 예를 들어, 마우리시오 베탕쿠르트Mauricio Betancourt는 최근에 지구 환경 변화에서 "신진대사 균열을 완화하는 데 있어서 쿠바 농업 생태학의 효과"에 대한 놀라운 연구를 저술했다.
스테파노 롱고Stefano Longo, 레베카 클라우젠Rebecca Clausen, 브렛 클라크Brett Clark는 <상품의 비극>에서 대양의 균열 분석에 마르크스의 방법을 적용했다. 한나 홀레만Hannah Holleman은 이를 사용하여 <제국의 건조지대>에서 과거와 현재의 건조지대를 탐색했다. 브렛 클라크Brett Clark, 리처드 요크Richard York, 그리고 우리의 저서인 <생태적 균열>과 이언 앵거스Ian Angus의 <인류세를 마주하며>를 포함한 상당수의 작품들이 기후변화의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 신진대사적 균열 개념을 활용했다.
안드레아스 말름Andreas Malm, 에이몬 슬레이터Eamonn Slater, 델 웨스턴Del Weston, 마이클 프리드먼Michael Friedman, 브라이언 나폴레타노Brian Napoletano와 같은 다른 사람들의 공헌뿐만 아니라 이러한 작업과 이름을 말하기에는 너무 많은 수의 학자와 활동가들은 기본적으로 모두 이러한 관점에서 볼 수 있다. 중요한 조직은 미국의 '기후 변화가 아닌 체제 변화'와 함께 존 몰리뉴John Molyneux가 주도적인 역할을 한 ‘글로벌 생태사회주의자 네트워크’Global Ecosocialist Network이다. 나오미 클라인의 작업도 신진대사 균열 개념에서 나왔다. 그것은 브라질의 무토지 노동자 운동(MST)과 중국의 생태적 문명 문제에 대한 토론에서 역할을 했다.
또 다른 문제는 마르크스주의 생태학과 마르크스주의적 페미니즘의 사회적 재생산 이론과 인종적 자본주의에 대한 새로운 분석 사이의 관계에 관한 것입니다. 이 세 가지 관점 모두 최근 몇 년 동안 착취를 넘어서 확장되는 그의 전반적인 비평에 필수적인 것으로서 마르크스의 착취 개념에 이끌렸다. 브렛 클라크와 내가 강탈과 균열, 즉 토지, 사용가치 및 신체의 수탈 사이의 관계와 이것이 신진대사 균열과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에 대한 최근 저서 <강탈과 자연>을 쓰게 된 동기는 바로 이러한 연결입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브렛 클라크와 한나 홀레만과 함께 작업한 생태적 제국주의와 불평등한 생태적 교환의 전체 영역이다.
오늘날에는 신진대사 균열 이론 자체를 겨냥하면서 마르크스의 생태학이 변증법적이라기보다는 이원론적이라는 새로운 비판이 제기된다. 그러나 이것은 물론 잘못된 생각이다. 왜냐하면 마르크스에게 노동과 생산 과정을 통한 인간과 (인간 외의)자연 사이의 사회적 신진대사는 자연과 사회의 매개로 정의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의 경우 이것은 신진대사 균열의 형태 안에서 소외된 매개로 나타난다. 총체성의 변증법적 매개로서 노동/신진대사에 초점을 맞춘 그러한 접근은 이원론에 이보다 더 반대될 수 없는 것이다.
다른 이들은 고전적 마르크스주의가 생태학적 문제를 다룬다면 마르크스 이후의 사회주의적 분석에 등장했을 것이지만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그 입장도 역시 틀린 것이다. 사실 그것은 <자연의 귀환>이 1882년과 1883년 각각 찰스 다윈과 마르크스가 사망한 이후 100년간의 사회주의와 유물론적 생태학의 연속성과 변화의 변증법을 탐구하면서 분명하게 답변을 내놓은 문제이다.
* 실제로, <마르크스의 생태학>에서 당신은 다윈과 알프레드 러셀 월리스의 진화론과 상관관계 속에서 마르크스의 유물론의 출현과 형성에 초점을 맞추었으며 정확히 처음 두 사람의 죽음과 함께 끝난다. 이제 새 책에서 당신은 이 시점부터 1960년대와 70년대에 생태운동이 등장할 때까지 주요 생태사회주의 사상가의 지적 계보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오랫동안 이러한 이야기 중 일부는 충분한 관심을 받지 못했다. 복구하는 데 왜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을까? 그리고 이러한 연결고리의 재발견은 생태주의적 운동의 출현을 다르게 이해하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되는가?
<자연의 귀환>은 마르크스의 생태학적 방법을 이어간다. 이는 앞선 책의 에필로그와 이후에 나온 책의 논거를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 <마르크스의 생태학>은 다윈과 마르크스의 죽음으로 끝난다. <자연의 귀환>은 그들의 장례식과 두 장례식에 모두 참석한 것으로 알려진 한 사람, 다윈과 토마스 헉슬리의 제자이자 마르크스의 가까운 친구였던 영국의 위대한 동물학자 E. 레이 랭케스터Ray Lankester로부터 시작된다.
<자연의 귀환>은 단순히 마르크스주의 사상의 발전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생태학이라고 부르는 것을 비판적 분석 형태로 발전시킨 사회주의자와 유물론자들을 대상으로 한다. 더욱이 우리는 이러한 사상이 어떻게 계보-역사적 방식으로 전승되었는지 알 수 있다. 모든 마르크스주의 역사서와 마찬가지로 이것은 기원의 이야기이자 연속성과 변화의 변증법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것은 복잡한 방식으로 다윈과 마르크스에서 1960년대 생태학의 폭발에 이르기까지 확장된 대체로 깨지지 않은 계보를 제시한다. 내 주장의 일부는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중반까지 영국의 사회주의 전통이 여기에 결정적이었다는 것이다. 이 시기는 영국 사회주의 발전의 주요 시기였을 뿐만 아니라 과학에서 가장 창의적인 작업들은 진화론적 생태학 노선을 따라 일종의 다윈과 마르크스를 종합한 것의 결과물이었다.
영국의 마르크스주의 과학자들은 소비에트 생태학의 초기이자 가장 역동적인 단계에 관여한 혁명적 마르크스주의 사상가들(거의 모두 나중에 스탈린 치하에서 숙청됨)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지만, 소비에트 과학자들과 달리 영국 좌파 과학자들은 살아남을 수 있었고, 근본적으로 새로운 사회생태학적, 과학적 관점을 제시하면서 자신의 아이디어를 발전시켰다. 예를 들어, 책이 출간된 직후부터 <자본주의, 자연, 사회주의> 저널에서 처음부터 제기된 마르크스의 생태학에 대한 공통된 비판은, 마르크스가 강력한 생태학적 비판을 발전시켰다 하더라도 이것이 이후의 사회주의 사상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한 답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마르크스의 과학이 당면한 운동과 시대적 쟁점을 훨씬 뛰어넘어 도달했으며, 새로운 모순과 도전이 발생하게 되면 마르크스의 과학적 유산에서 새로운 해답을 찾을 수 있다는 로자 룩셈부르크의 진술이었다. 실제로, 자본주의의 생태적 위기에 대한 마르크스의 인식은 시대적 경향에 기초하여 역사적 발전과 운동보다 훨씬 앞서 있었고, 이는 그의 분석을 어떤 면에서 그보다 덜 가치있게가 아니라 더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대답은 사회주의적 생태학의 분석이 없었다는 전제가 틀렸다는 것이다. 실제로 생태학은 주로 사회주의자들의 창작물인 중요한 분야였다. 나는 이미 <마르크스의 생태학> 에필로그에서 이것을 설명하려고 했지만 훨씬 더 많은 것이 필요했다. 주요한 도전은 마르크스 이후 100년간의 사회주의 및 유물론적 생태학의 역사를 밝히는 것이었다. 그러나 헬레나 시한Helena Sheehan의 경이로운 <마르크스주의와 과학철학>을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2차 문헌이 없었기 때문에 이것을 하는 것은 큰 일이었다.
나는 <마르크스의 생태학>이 출간된 2000년 즈음부터 <자연의 귀환>을 위한 기록 연구를 시작했다. 아이디어는 항상 에필로그에서 제기된 문제들을, 영국의 맥락에 초점을 맞추어서 더 탐구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이 작업을 시작하면서, 나는 또한 <먼슬리 리뷰>Monthly Review의 공동 편집자(그리고 결국은 유일한 편집자)의 직책을 맡게 되었고, 그것은 자연스럽게 나를 다시 정치경제학으로 이끌었고, 그것은 내 작업을 수년간 지배했다.
게다가 이 시기에 생태학에 대해 글을 썼을 때 나는 무엇보다도 즉각적인 위기에 대처해야 했다. 그래서 나는 <자연의 귀환>과 같은 집중적인 프로젝트를 수업에서 짧은 방학 동안 스트레스가 없을 때에만 작업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작업은 수년에 걸쳐 수많은 중단과 함께 천천히 진행되었다.
나는 몇몇 친구(특히 이 책을 헌정한 존 매기John Mage)의 끊임없는 격려와 <먼슬리 리뷰> 자체에 생태학적 문제가 너무도 크게 다가온 사실이 없었다면 이 책을 끝내지 못했을 것이다. 생태학적 비판은 정치경제학 비판 못지않게 중요해져서 체계적인 역사적 접근의 개발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책이 그렇게 오래 걸린 더 큰 이유는 이 이야기들이 알려지지 않았고, 반세기 이상 아무도 읽지 않은 작품들을 포함한 잊혀진 자료들에 대한 엄청난 양의 기록 연구와 추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위대한 작품들은 버려지고 알려지지 않은 구석에서 곰팡이가 피었다. 다른 글들은 출판되지 않았거나 찾기 힘든 장소에서만 등장했다.
J. B. S. 할데인Haldane, 조셉 니덤Joseph Needham, J. D. 베르날Bernal, 하이만 레비Hyman Levy, 랜슬롯 호그벤Lancelot Hogben과 같은 사상가의 역할은 생태사상의 발전에 있어 초기의 탁월함에도 불구하고 알려지지 않았거나 잊혀진 상태였으며, 부분적으로 마르크스주의 내부적 분쟁의 희생자였다. 벤자민 패링턴Benjamin Farrington, 조지 톰슨George Thomson, 잭 린제이Jack Lindsay와 같은 위대한 좌파 고전주의자들 또한 잊혀졌다. 이 모든 것을 다루어야 하기 때문에 적절한 역사적 맥락에서 배치된 방대한 범위의 분석을 파악하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역사적 연관성은, 당신의 말대로, 분명히 거기 있었다. 이야기는 결국 배리 커머너Barry Commoner와 레이첼 카슨Rachel Carson과 같은 인물들과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 리처드 레빈스Richard Levins, 리처드 르윈틴Richard Lewontin, 스티븐Steven과 힐러리 로즈Hilary Rose, 린제이, 그리고 E. P. 톰슨Thompson (영국의 대표적인 반핵 운동가가 된)과 같은 인물들로 이어진다. 이들 모두는 비록 방식은 다르지만 이 지적, 정치적 유산으로 인해 엄청난 영향을 받았다.
이 역사가 오늘날의 투쟁에서 우리를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에 대한 당신의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아마도 가장 간결한 것은 내가 <자연의 귀환> 서문에서 인용한 퀸틴 스키너Quentin Skinner의 말일 것이다. 그는 그러한 역사의 유일한 목적은 "우리 사회가 우리의 상상력에 어떻게 제한을 가하는지"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우리는 모두 이 정도까지는 마르크스주의자"라고 덧붙였다.
(기사 등록 202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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