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윤

● 이란 침략전쟁에 파병, 절대 안 된다!
지난 반년 가까이 호르무즈 파병 가능성이 언론에 나오면 청와대가 부인하는 패턴이 반복돼 왔는데 결국 그것은 '간보기'였다. 여러 정보들을 종합하면 그 중심에는 위성락 안보실장이 있는 것이 확실하다. 위성락은 오랫동안 외교안보와 대북 정책에서 전통적 주류의 대변자였다.
그래서 이재명 정부를 친미, 친트럼프, 친이스라엘의 방향으로 이끄는 핵심 구실을 해 왔다. 하지만 위성락이 임명될 때 그를 막아서는 언론은 거의 없었고, 이후에는 간보기에 함께 해 왔다. 사실 다른 누구보다 위성락이야말로 이 정부에서 우리가 막아서거나 물러나게 해야할 첫 번째 인물이다.
이것은 반전평화, 반제국주의, 한반도 평화를 바라는 모든 사람들의 핵심 과제다. 물론 위성락 뒤에는 '한미동맹'을 성경처럼 믿는 기득권 세력이 있다. 단지 믿음이 아니라 반세기 동안 형성된 이해관계이기도 하다. 트럼프가 반도체 관세 인상 카드를 꺼낸 것은 그것을 겨냥한 것이다.
관세가 오르면 반도체 수출, 초호황, 초과이윤 등에 막대한 타격이 불가피하다. 재벌과 기득권 세력은 이것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 반도체 특수를 기반으로 메가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던 이재명 정부도 여기에 발목이 잡혀 있다. 더구나 대북정책에서도 트럼프에 발목이 잡혀 있다.
'트럼프가 피스 메이커가 되도록 우리가 페이스 메이커로 돕겠다'는 것인데, 트럼프는 이것을 역이용한다. 먼저 중동에서 '침략과 학살의 페이스 메이커' 역할을 하라는 요구다. 이것을 받아들이면 그 다음에는 한반도에서 '평화와 화해의 페이스 메이커'가 될까? 그럴 리가 없다.
지난 30년간의 역사를 돌아보면 중동의 평화와 한반도의 평화는 서로 연결돼 있었다. 예컨대 2003년에 미국 부시 정권은 이라크를 침공하면서 '다음은 이란과 북한'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라크 침략전쟁이 재앙적 실패로 끝나며 2007년 남북정상회담과 10.4선언이 가능해졌다.
이번에도 트럼프가 호르무즈에서 수렁에 빠지지 않았다면, 갑자기 북미대화의 가능성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트럼프는 수렁에서 살아나오면 어떤 망나니 짓을 할지 모르는 너무나 위험한 시한폭탄이다. 그런데 우리가 수렁에 빠진 트럼프를 구하러 나서서 이란에 칼을 겨눈다?
그 결과는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이미 이란은 “파병하면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 “위험한 선택에는 대가가 따른다”라고 경고하고 있다. 최악의 시나리오가 눈 앞에 다가오고 있다. 이란은 미국 중간선거를 앞두고 트럼프를 엿먹이기 위한 군사적 보복과 공격을 벌써 시작했다.
트럼프도 그것을 잘 알고 있지만, 이제와서 물러설 수도 없다. 따라서 한국 함정 등을 총알받이로 앞세워 계속 이란을 도발하려 한다. 그러면 미국 항모와 미군기지까지 공격하는 이란이 가만 있을 리가 없다. 지난 5월 나무호 피격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선체가 뚫리는 정도가 아니라 인명 살상도 벌어질 수 있다. 이것이 중동 국가들이 겪고 있는 일이다. 그래서 사우디조차 미국의 '프로젝트 프리덤' 작전에 반대하고 동참을 거부했다. 따라서 파병이든, 국회 동의가 없는 청해부대의 작전구역 확대나 정보 공유든 절대 안 된다.
그것이 무엇이든 미국과 이스라엘의 침략전쟁을 돕는다는 본질은 달라질 수 없다. 우리는 이재명 정부의 파병 가능성을 차단할뿐 아니라, 나아가 트럼프가 더 이상 공갈 협박을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 사실 미국과 이스라엘의 가자 침략과 집단학살부터 막았어야 했다.
그것이 성공하면서 이란 침략과 학살로 이어졌고, 이제 우리에게 파병 강요로 이어졌다. 가자 집단학살을 막지 못하고, 오히려 무기 수출로 도운 것과 이란 침략을 나몰라라 한 것이 죄값으로 돌아왔다. 이제 그 어느 때보다 거대하고 강력한 반트럼프, 반미 운동이 필요하다.
2002년 미군 장갑차에 여중생들이 희생됐을 때 등장한 저항은 역사상 최대였다. 그 전까지 광화문 미대사관 앞에서 집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죽어간 여중생들을 생각하면 눈물흘리는 수십만명이 모여서 미대사관 앞에서 대형 성조기를 찢어버렸다.
당시에 한나라당(국힘) 대선 후보였던 이회창까지 촛불집회에 참가했고 미국의 사과를 요구하는 청원서에 서명했다. 결국 부시 대통령은 김대중 대통령에 전화해 "깊은 애도와 슬픔"을 말하며 사과했다. 동아시아에서 핵심 동맹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미국을 움직였다.
당시 주한미대사였던 토머스 하바드는 나중에 “두 어린 소녀의 죽음과 미국의 대응에 대한 한국 국민의 분노가 노무현 후보의 대통령 당선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거의 없다”고 돌아봤다. 지금 다시 그때와 같거나 뛰어넘는 더 강력한 운동을 건설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정파, 세대, 계층 등을 뛰어넘어 가장 폭넓은 연대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2002년에 두 여중생의 사진을 들고 모두 함께 했듯이, 이란 미나브 초등학교 170명 학생 등을 죽인 미국과 이스라엘의 추악한 전쟁범죄에 절대 동참할 수 없다는 모든 마음과 분노를 모아야 한다.
● 용혜인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에 대해
용혜인 후보 논란에 대해 먼저 말하고 싶은 것은 지금 쏟아지는 가짜뉴스, 억까, 조롱과 혐오성 인신공격에 반대한다는 것이다. 국힘, 주류언론, 반페미 세력에 의해 물속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람에게 돌 하나 더 던지며 '이것은 저들과 다른 정당한 비판'이라고 정신승리하고 싶지 않다.
물론 용후보의 장점뿐 아니라 단점과 문제도 지적할 수 있고 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쏟아지는 돌무더기에 그런 지적이 섞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그런 장면은 전혀 보기 싫다. 기소당과 용후보에 대한 비판과 지적은 이 모든 꼴사나운 돌우박이 어느 정도 그치고 나서 할 일이다.
달리기 시합을 하다가도 상대가 돌에 걸려 넘어지면 잠시 기다려주는 법이다. 이것은 진보좌파 운동 안에서 나와 정치적 입장과 노선이 다른 모든 이들에게(통합진보당, 대진연, 심지어 성폭력 피해자와 대리인인 나에게 지독한 괴롭힘을 가해온 '노동자연대'에도) 항상 적용하던 기준이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것은 아젠다와 프레임 설정 능력을 상당 부분 회복한 족벌언론과 보수우파 정치세력의 연합 공세다. 그 힘은 진보개혁 언론, 지식인, 평론가, 민주당 일부까지 올라타도록 만들고, 그렇게 다져진 구도 속에서는 다른 목소리를 내기도, 들리기도 어렵게 돼 있다.
이번에도 프레임 형성의 밑돌이 된 것은 온갖 가짜뉴스들이다. '용후보가 단 1건의 성평등 관련법안도 발의하지 않았다/ 유령시도당으로 보조금을 횡령했다/ 측근 인사들에 일감을 몰아줬다/ 중국인에 집팔아 2천억 시세차익 남겼다/ 남편을 셀프 임명해 월급으로 몇억을 줬다.
재산이 순식간에 4억 증가했다/ 당비 납부를 악용해서 꼼수 절세를 했다/ 지방선거 출마자에게 공천헌금을 받고 밀실공천을 했다/ 정부 지원금을 부당 수령했다/ 부부가 사적으로 운영하는 가족소득당이다/ 위성정당으로 국고보조금에 의존하는 기생충 정당이다...'
이 대부분은 조금만 확인해 봐도 금방 사실이 드러날 '아니면말고'다. 또 지금의 정치현실과 제도 등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말도 안 된다는 것을 모를 수가 없다. 하지만, 정치인과 평론가들은 악의적으로 일단 지르고, 대부분 언론은 확인하거나 검증하지 않고 일단 쓰고 있다.
기소당은 낱낱이 해명하고 있지만, 언론방송에는 '용혜인, 오늘도 출근길 침묵'이라고 나온다. 대변인이 해명하면 내용은 간데없고 '장미 문신'만 남고, 용혜인이 직접 기자회견해도 그 내용을 제대로 전달해주는 곳은 거의 없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은 제기된 문제들을 사실로 믿는다.
지금 쏟아지는 의혹과 보도들이 모두 사실이라면 누가봐도 용후보와 기소당은 탐욕스럽고 위선적이고 파렴치한 괴물들로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전국민적 비난과 조롱의 난장판이 펼쳐지고, 용후보에 대한 혐오감은 극에 달하고 있다. 혐오가 문제라고 비판하던 어떤 지식인도 "필요한 건 논평이 아니라 타액"이라고 거들고 나선다.
댓글과 SNS에서는 당사자를 너덜너덜하게 만드는 인격살해에 가까운 인신공격들이 경쟁적으로 펼쳐진다. 이런 집단린치 속에서 용후보를 사퇴시켜 저들이 이루려하는 것과 우리에게 남을 것은 '위성정당에 대한 심판'이 아니다.
'어떤 흠결도 없는 더 철저한 페미니스트 장관'도 아니다. 그 정반대가 진실이다. 지금, 국힘과 보수언론, 우파 시민단체들은 '이러니 비례대표제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용후보가 추진해 온 생활동반자법, 차별금지법, 비동의 간음죄, 군형법 개정 시도 등을 문제삼고 있다.
결국, 용후보는 이번 개각에서 가장 문제와 흠결이 많은 사람이기에 표적이 된 것이 아니다. 이재명 정부가 '왼쪽도 챙기겠다'고 하면서 민주당 바깥의 소수 진보정당 출신 페미니스트를 지명한 것이 출발점이었고, 이준석의 '차라리 종북을 해라'는 비난이 공격의 신호탄이 됐다.
민주당이 나서서 방어해줄 가능성도 적고, 강약약강의 언론들이 더 쉽게 물어뜯을 것이고, 진보좌파 운동 내에서도 오랜 갈등과 분열이 낳은 상처 때문에 손잡아줄 사람들이 별로 없다는 것도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개각 때마다 대기업이나 김앤장, 또는 오랜 고위관료 출신이면서 보수적 관점을 가진 후보들은 문제가 되는 경우가 별로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들을 '파묘'하면 더 많은 진짜 결함들이 나올 가능성이 높지만, 이들은 정부에 들어가서 위와 오른쪽의 압력을 전달하며 기득권의 이해를 대변하고 개혁을 가로막는 브레이크가가 될 것을 기대받는다.
하지만 성평등과 사회정의를 위해 우리가 더 집중해야할 것은 이런 인물과 세력에 대한 검증과 비판이다. 그리고 지난 열흘간 참아왔지만 비위가 상해서 더 이상 견디기 힘든 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국힘과 언론들이 용후보에게 '위성정당과 국고보조금' 어쩌고하며 비난하는 장면이다.
민주당과 소수정당들의 연동형 비례대표 합의를 깨고 위성정당을 먼저 만든 것은 바로 국힘이다. 그리고 국힘의 위성정당은 소수정당에게 일부라도 기회를 주려고 만든 것도 아닌 '순도 100% 가짜 위성정당'이었다. 국힘 인사들이 모두 후보가 됐고 선거 이후 독자 활동한 적도 없다.
국힘과 윤석열 정부를 비판하거나 견제한 적도 없다. 당선자들은 선거 이후 모조리 국힘에 입당했고 당시 당선한 김민전, 임요한, 김장겸 등은 윤석열 쿠데타를 앞장서 지지했다. 국힘은 두 번의 위성정당 창당과 흡수 과정에서 국고보조금과 선거보조금만 110억 가까이 챙겼다.
그래놓고 지금 국힘은 용후보와 기소당에 대해서 '기생충'이라고 욕하고 있다. 국힘이 스스로의 잘못을 반성하고 앞으로 비례대표 취지를 인정하고 위성정당을 안 만들겠다고 약속하지 않으면서 하는 모든 비판과 주장, 그것을 그저 받아쓰는 언론의 기사들은 모두 역겹고 새빨간 거짓이다.
● 내란 2차 종합특검의 의미와 성과
엊그제 윤석열 내란 2차 종합특검이 반년간의 수사를 마치고 기자회견과 수사 결과 발표를 했다. 거기서 매우 의미있는 성과와 너무나 중요한 지적들이 나왔다. 하지만, 우리 사회와 주류언론은 놀랄만큼 이 소식에 무관심했다. 얼마전 가까스로 쿠데타를 막아낸 것이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단편적인 관심과 보도는 있었지만 대부분 그 의미를 평가 절하했다. '새로 밝혀낸 것이 별로 없고, 용두사미에 그친, 세금만 낭비한 수사'라는 식이었다. 특검 안팎에서 벌어진 잡음과 논란에 더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이러한 강건너 불구경은 사실 지난 반년간의 수사 동안에도 계속됐다.
권창영 종합특검이 직면한 어려움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중요한 피의자들은 출석을 거부하거나 진술을 거부하며 수사를 방해했다. 또 조희대 사법부의 판사들은 주요 고비마다 영장을 기각하며 찬물을 끼얹었다. 반년만에 내란의 실체를 모두 파헤친다는 과제부터 사실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종합특검은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성과를 남기고 디딤돌을 놓았다. 신원식 안보실장과 김태효 안보실 차장, 조태용 국정원장, 심우정 검찰총장,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 국힘 주요 인사 등을 기소했다. 이것은 12.3 계엄이 단지 군부의 일부만이 아니라 대통령실, 검찰, 국정원 등
주요 국가기관이 집단적·조직적·장기적 계획과 공모에 따라 진행한 내란이었다는 뜻이다. 또 종합특검은 '내란은 윤석열의 직무가 정지된 12월 14일에 종료됐다'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실제로 당시에 우리는 윤석열이 언제 다시 쿠데타를 시도할지 모른다는 공포 속에 떨었다.
그 열흘 동안 거대하고 찬란한 투쟁이 벌어졌고 결국 윤석열은 탄핵됐다. 이처럼 시민의 힘으로 내란을 진압한 것이 진실이고 종합특검은 그것을 재확인한 셈이다. 그밖에도 종합특검은 윤석열 무리가 내란으로 가는 과정에서 저지른 여러 국정 농단 사건들의 진실을 어느 정도 밝혀냈다.
물론 아쉬움도 많고 더 많은 것이 밝혀져야 한다. 특히 내란목적의 학살과 파괴를 준비한 '노상원 수첩'의 진실을 밝히다가 멈춘 것은 뼈아프다. 그래서 종합특검은 자신들이 한 일은 "두번째 퍼즐을 맞추는 것에 불과하다"라며 '특별수사본부를 구성해 끝까지 진실을 밝히자'고 제안했다.
'내란 수사와 재판은 뉘른베르크 나치 재판이나 도쿄 전범재판처럼 더 철저히 역사적 진실을 밝히고 기록해야 한다'는 종합특검의 지적은 옳다. 내란은 정말로 깊고 넓은 뿌리를 가지고 있다. 이 나라의 기득권 카르텔 자체가 반복되는 쿠데타와 군부독재 속에서 형성된 역사가 있다.
그 역사는 87년 민주화 이후에 중단되긴 했지만, 최후에는 부와 권력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수단으로 총칼을 잡으려는 본능은 사라지지 않았다. 윤석열 내란은 그 역사와 구조 속에서 나왔고, 이번엔 실패했지만 다음에도 그런다는 보장은 없다. 엊그제 기자회견에서 권창영 특검은 이렇게 말했다.
“12·3 내란은 윤석열 개인이 벌인 일회적 사건이 아니라 여러 국가기관이 연결된 집단적·조직적 범죄였으며, 아직 그 구조가 완전히 규명되거나 해체되지 않았다”, “내란세력은 아직 역량과 의지를 보존하고 있으며 다음 기회가 오면 다시 내란을 일으킬 수도 있고 성공할 가능성도 있다”
"이번에 시민들은 헌정질서 회복을 위해 온갖 고통을 마다하지 않고 온몸으로 싸웠다", "우리는 내란 관련 조직과 인적 네트워크를 아직 완전히 해체하지 못했다”, “내란 세력과의 전쟁은 이제 시작이다." 우리는 권창영 특검이 남긴 이 말들을 반드시 기억하며 힘을 모아 계속 진실을 밝혀야 한다.
● 국정원은 내란의 기획자였는가?
민주당 윤건영 의원이 최근 폭로한 내용은 매우 중요하다. 국정원이 계엄 반년전인 2024년 총선전부터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 등 30여명의 민간인들을 불법사찰하고 매주 윤석열에게 보고했다는 것이다. 계엄 3개월전인 2024년 9월에는 '계엄시 대공수사권 행사 검토' 문건도 작성했다.
이것을 국정원 모든 부서에 조직적으로 배포하고 각 부서별로 관련 문건도 준비했다. 이를 바탕으로 윤건영 의원은 “국가정보원이 계엄 선포 사실을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으며 심지어 주도적으로 준비했다"고 지적했고 나아가 국정원이 "비상계엄의 최초 기획자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충분히 설득력있는 추정이다. 왜냐하면 국정원은 이 나라의 가장 대표적이고 핵심적인 비밀 정보기관이면서 억압적 국가기구이기 때문이다. '반국가 세력', '종북 좌파'라는 프레임을 생산한 원조이며, 국가보안법을 휘두르며 간첩 조작과 공안 정국을 만들어낸 오랜 역사가 있다.
군사독재자들과 보수우파 정권들이 가장 의존하던 권력기관이었고 중정->안기부->국정원으로 이름을 바꿔왔지만 그 본질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민주당 정권들이 국내정치 개입을 금지하거나 대공수사권을 박탈하긴 했지만, 보수우파가 다시 정권을 잡으면 그것을 거꾸로 돌리려 했다.
윤석열도 집권하자마자 검사 출신의 최측근들을 국정원으로 보내서 자신의 무기로 삼았다. 실제로 국정원은 윤석열 정권 초기부터 '민주노총 간첩단 사건' 등을 터트리며 내란으로 가는 길을 앞장서 닦았다. 어느 순간부터 윤석열은 툭하면 '종북 반국가 세력'이라는 말을 반복하기 시작했다.
이런 윤석열이 절체절명의 쿠데타를 시도하면서 국정원의 힘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처음부터 별로 믿기지가 않았다. 실제로 12.3 밤에 국정원 직원 130여명이 출근해 각종 회의를 진행했다. 선관위로 출동한 군간부에게 여인형 방첩사령관은 '곧 검찰과 국정원이 올 것'이라고 했다.
방첩사 간부-검찰청 검사-국정원 처장간의 통화 기록도 남아있다. 심지어 국정원은 그날 새벽 국회에서 계엄을 해제한 이후에도 계엄사에 인력 파견을 추진한 것이 밝혀졌다. 이 모든 사실은 국정원이 내란을 미리 알고 함께 준비했다는 윤건영 의원의 추정을 강력하게 뒷받침하고 있다.
여기서 홍장원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홍장원은 30년 동안 국정원에서 일하며 잔뼈가 굵어온 핵심이며 블랙요원이었다. 이것은 국정원의 어두운 역사와 관행에서 그가 자유롭지 않다는 뜻이다. 특히 홍장원은 박근혜 정권 때 국정원 비서실장이었다. 박근혜 정권 때 국정원이 저지른
민간인 사찰, 간첩 조작, 댓글 공작, 내란음모 조작과 진보당 강제해산 등에 그도 책임이 있다고 봐야 한다. 이 때문인지 그는 문재인 정부 때 국정원에서 밀려났다. 하지만 윤석열이 집권하면서 다시 돌아와 국정원장인 조태용을 넘어서 윤석열에게 직보하는 '실세 중의 실세'로 불렸다.
따라서 윤석열이 쿠데타 직후에 조태용이 아니라 홍장원에게 전화한 것은 우연이 아닐 수 있다. 또 윤건영 의원의 지적처럼 '국정원이 내란을 미리 알고 함께 기획 준비했다'라면 홍장원만 모르게 했을까라는 의문도 생기게 된다. 실제로 내란의 밤에 홍장원이 지시를 내리고 역할을 했다는
증언과 증거들이 나오면서 종합특검이 홍장원을 기소한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이것은 홍장원을 '윤석열의 지시를 거부하고 내란을 막은 내부고발자'로 알던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며 의문을 낳고 있다. 홍장원은 내란에 함께하다가 실패를 직감하고 마음을 바꿔 돌아섰던 것일까?
그렇다면, 이것은 12.3 쿠데타를 막아낸 진정한 힘은 그날밤 목숨을 걸고 거리로 나선 시민들에게 있었다는 것을 다시 증명하는 이야기가 된다. 그 힘이 국회에서 계엄 해제를 가능하게 하고, 내란세력도 갈라지게 만든 셈이다. 사실 12.3 직후에도 홍장원의 일부 진술은 의심스러웠다.
당시에 홍장원은 자신이 체포명단을 받아적을 때 민주노총 위원장 이름을 몰랐다고 했다. 국정원의 핵심 간부가 진보운동의 핵심 단체인 민주노총 위원장 이름을 모른다는 것은 상식적이지가 않았다. 최근에도 홍장원은 방송에 출연해 자기 변명을 하며 쉽게 믿기 어려운 말들을 했다.
'국정원은 계엄의 무풍지대였다', 'TV를 보고 처음 계엄을 알았다'... 일부에서는 이렇게 홍장원 진술의 신빙성이 흔들리면 윤석열 12.3 내란에 대한 심판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고 걱정한다. 하지만 재판에서는 특정 증인이 기소됐다고 그의 모든 진술을 일괄적으로 배척하지는 않는다.
무엇보다 윤석열의 내란죄는 종합적인 물증과 다수의 증언으로 입증되어 온 것이다. 앞으로 더 밝혀져야겠지만, 홍장원이 뒤늦게 내란세력에서 등을 돌리고 민주주의 편에 선 것이 사실이라면 더 성찰하면서 국정원과 내란에 관한 모든 진실을 솔직히게 밝히는데 앞장서는게 옳은 태도일 것이다.
● 프란체스카 홍의 도전과 민주적 사회주의의 미래
프란체스카 홍이 0.4% 차이로 민주당의 위스콘신 주지사 민주당 내부경선에서 패배했다. 여러모로 너무나 아쉬운 결과다. 먼저 패배라는 결과에만 얽매여 홍이 얼마나 수많은 악조건과 걸림돌 속에도 결코 무시할 수 없고 의미있는 성과를 거둔 것인지를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홍은 설거지하고 요리하던 노동자 출신에 대학 졸업장도 없이 이혼하고 혼자 아이를 키우고 있는 집없는 세입자였다. 좌절과 방황을 이겨낸 홍의 삶을 보면, 밑바닥까지 가본 이들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홍은 2011년 공화당 주정부의 공공부문 노동권 박탈 시도에 맞선 투쟁에 부모를 따라 참가하며 급진화하며 사회운동에 뛰어들었고 이후 민주적사회주의(DSA) 조직에 가입하고 하원의원도 됐다.
그리고 이번에 위신콘신의 민주당 주지사 후보로 도전했다. 학벌도, 인맥도, 자산도 없고, 이름도 알려지지 않았던 완전한 아웃사이더였지만 말이다. 더구나 위스콘신은 미국 중서부의 대표적인 스윙(경합) 지역으로 민주당의 힘이 크지 않았다. 전체 인구에서 백인 비중이 압도적이고 아시아계가 3% 정도에 불과하며 매카시의 고향으로 매카시즘의 그림자가 여전한 지역에서 민주적 사회주의자인 아시아계 여성의 도전 자체가 기적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홍이 순식간에 민주당에서 지지율 1위가 됐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진보적이고 민주당 강세 지역인 뉴욕에서 조란 맘다니의 급성장을 뛰어넘는 사건이었다. 위스콘신에서 이름없던 아시아계 여성 사회주의자가 주자사가 될 수 있다면, 모든게 가능하다는 기대/공포가 제기됐다.
따라서 이 흐름을 차단하려는 트럼프와 공화당의 필사적 공격은 당연했다. 그들은 아직 민주당 후보로 확정되지도 않은 홍을 '공산주의자', 심지어 '지하디스트'라고 선제 공격했다. 대부분의 주류언론들은 홍의 10년전 SNS까지 뒤지며 작은 말실수나 흠집을 찾아내서 돌을 던졌다.
한국의 조선일보까지 이런 공격에 동참할 정도였다. 문제는 민주당의 주류도 이런 공격에 동참했다는 사실이다. 홍이 '믿을 수 없는, 불안한, 본선에서 패배할' 후보라는 공격이 계속됐다. 그들은 출마를 포기한 사람(크롤리)를 다시 불러서 홍을 막을 후보로 세웠고, 민주당의 토비 에버스 위스콘신 현 주지자가 앞장서 크롤리를 도왔다.
에버스는 '홍이 이겨도 11월 본선에서 돕겠다'는 말을 분명히 하지 않았다. 선거자금도 홍보다 크롤리에게 압도적으로 몇 배나 더 많이 몰렸다. 예컨대 홍은 광고비로 50만 달러를 쓰는 동안 크롤리는 400만 달러를 쓸 수 있었다.
즉 민주당 주류는 위스콘신의 지지자들에게 사실상 '홍을 찍지마라'는 지침을 내린 셈이다. 따라서 이런 여러 악조건과 걸림돌 속에서도 홍이 크롤리를 이길뻔 하다가 0.4% 차이로 패배한 것은 놀라운 일이고 큰 성과라고 보는게 맞다.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홍의 주장과 공약이었다.
홍은 무상 공공보육, 공공교통, 공공 식료품점, 주거비 안정, 최저임금 20 달러, 학자금 대출 탕감, 주 32시간 노동제, 부유세 강화, 이민세관단속국(ICE) 폐지, 이스라엘의 가자 학살 반대 등을 약속하고 주장했다. 특히 시민들의 불만이 큰 데이터센터 건설 중단을 약속한 유일한 후보였다.
홍은 "이런 상황에서 ‘점진주의’는 무책임하다. ‘큰 위기’에는 그에 걸맞은 속도의 ‘큰 해결책’이 필요하다"라고 주장하며 급진적 방향을 분명히 했고, 자신의 선거 운동을 "노동 계급이 자신의 힘을 되찾아가는 더 큰 운동의 일부"라고 규정했다. 선거 자금은 부족했지만 홍을 지지한 자원봉사자 7천여 명은 14만 번 가까이 집들을 방문해 직접 지지를 호소했다.
민주당 지지자의 30%가 스스로 '민주적 사회주의자'라고 답하는 여론조사가 나오는 상황에서, 이런 급진적 공약과 풀뿌리 선거운동은 큰 성공을 거두었다. 아슬아슬한 패배가 그것을 삭제할 수는 없다.
11월 본선거를 위해서도 홍은 크롤리보다 더 나은 후보였다. 스윙(경합)주는 좌도 우도 아닌 중간이 아니다. 그보다는 어느 당에도 충성하지 않고 반기득권 정서가 큰 지역이라고 볼 수 있다. 2016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도 힐러리가 아니라 샌더스가 이긴 곳이 위스콘신이다.
따라서 11월에, 부정선거 음모론을 지지하는 트럼프 충성파 MAGA주의자인 공화당 후보 톰 티파니를 꺾기 위해서도 홍의 승리가 필요했다. 그 점에서 버니 샌더스나 오카시오 코르테스같은 DSA의 전국적 스타 정치인들이 공개적으로 홍을 지지하며 선거운동을 돕지 않은 것은 아쉽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홍이 '추수감사절 폐지', '경찰 예산 삭감' 등의 과거 과격한 발언과 말실수(?)들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바로잡지 못하면서 거리를 두게 됐다는 말이 있다. '정체성 정치'보다는 '계급과 민생 정치'가 중요하다는 판단 때문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이런 대립은 틀렸다.
힐러리나 해리스가 실패한 이유는 그들이 여성과 인종을 내세웠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신자유주의나 이스라엘 학살 지지와 연결시켰기 때문이다. 정체성 정치와 계급 정치는 얼마든지 급진적으로 결합될 수 있다. 맘다니는 무슬림 이민자 소수인종이면서 노동계급의 목소리를 대변했다.
결국, 이번 위스콘신에 대한 논쟁과 평가는 민주적 사회주의 바람이 민주당 주류를 넘어 나아가기 위한 방향이 무엇이어야 하는가로 이어진다. DSA는 '당선 가능성'을 위해 과거의 '급진적 발언과 말실수'들을 더 신속하고 과감하게 바로잡아야 할 것인가?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한국인에겐 저항의 피가 흐르고 있다", "우리도 여기서 [대통령 탄핵같은] 그런 운동을 만들어야 한다", "한국인과 디아스포라의 역사는 트라우마와 회복력의 역사“라고 말하던 홍의 이번 도전과 성과는 미국을 넘어서 진보좌파 정치 일반이 직면한 이런 고민에도 중요한 화두를 던지고 있다.
● 검찰 개혁에 관한 한겨레 이세영 논설위원의 글을 읽고
한겨레의 아주 오랜 독자로서 꼭 챙겨보는 필자의 글도 있지만, 이름을 보고 대개 넘어가게 되는 글도 있다. 미안하지만 이세영 논설위원도 좀 그랬다. 지적 능력을 과시하는 듯한 문장들과 괜시리 길고 이해하기 어렵게 쓰여진 글들을 개인적으로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검찰 관련 글도 그냥 넘어갔는데, 여러 사람이 분노하며 비판하는 반응을 보이길래 호기심에 찾아보게 됐다. 그러고나서 느낀 것은 실망과 함께 좀 너무한다는 생각이었다. 이번 검찰 개혁 법안이 통과되는 과정에서 그것을 추진하고 주도한 사람들에게서 나타난 것이 "아렌트가 피고인 아돌프 아이히만한테서 감지해낸 감정 상태"라는 문장이 대표적이다.
즉, 철저한 검찰 개혁을 지지하고 행동한 사람들이 홀로코스트를 기획한 나치 학살자와 비슷하다고 매도하고 조롱한 셈이다. 검찰 개혁에 무관심하거나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 중에서, 이런 식으로 검찰 개혁을 깔아뭉개고 욕보이는 화법은 윤석열과 국민의힘, 친검 족벌언론들에서는 흔히 볼 수 있지만, 한겨레 논설위원이라면 다른 접근을 기대하는게 자연스럽다.
게다가 이세영 논설위원은 검찰 보완수사권 폐지를 "최초의 목적 자체를 증발시켜버리는 증상"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이것은 검찰 개혁이 제기된 이유와 목적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는지 의구심을 갖게 만든다. 검찰에게 기소권뿐 아니라 수사권까지 있는게 문제라는 문제의식에서 보완수사권 폐지는 '목적의 증발을 보여주는 증상'이기는커녕 너무나 자연스럽고 필연적인 논리적 결론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보완수사권은 남겨두자'는 이재명 정부 일부와 법무부의 주장에 많은 검찰 개혁 지지자들이 '검찰 개혁의 목적은 어디갔냐'고 반발했던 것이다. 더욱 이해나 동의할 수 없는 것은 이세영 논설위원이 '검찰 수사권 박탈'을 "한국 리버럴의 핵심 슬로건"이라고 지적하는 부분이었다.
먼저 한국의 리버럴(자유주의) 세력은 단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바로 이세영 논설위원이 속한 한겨레와 경향신문같은 대표적 자유주의적 개혁 언론들이 검찰 개혁에 심드렁한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대개 많은 자유주의 지식인과 언론들은 검찰 개혁에 큰 관심이 없고, 흔히 검찰 개혁을 '먹고사는 민생'과 무관한 여야간 정쟁의 이슈 정도로 깎아내린다.
그리고 오히려 엘리트 검사들의 편에서, 그들의 시각으로 문제를 접근하고 설명한다. 이것은 '자유주의 세력'은 언제나 어디서든 국가기구의 민주적 개혁같은 문제에서 불철저하고 타협적이라는 문제와 연결돼 있다.
'자유주의 세력이 자유주의적 개혁에서 한발 빼는' 모순적 현상은 그들이 지배체제와 권력의 일부라는 것과 관련있다. 오늘날 자유주의 세력은 봉건체제와 맞서던 혁명적 세력이 아니다. 오히려 자본주의 사회의 주된 운영자다.
그래서 미국 민주당의 리버럴 주류는 트럼프의 집권과 폭주를 가능하게 만든 비민주적 헌정체제와 선거제도 등을 별로 고치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것이 자신들의 오랜 권력기반이기도 했으므로. 이런 현상은 후발 자본주의 국가에서 더 심해지는 경향이 있다. 권위주의적 방식으로라도 빨리 선진국을 따라잡아야 한다는 축적의 압박 속에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 자유주의 세력의 핵심 과제'로서 검찰 수사권 박탈을 설명하는 것은 별로 설득력이 없다. 그러면 왜 78년만에야, 더구나 자유주의 세력이 국가 권력을 공유하게 된 87년 민주화 이후에도 30년도 더 넘어서야 가까스로 검찰 수사권 박탈이 이루어진 것인지 설명하기 어렵다.
또 자유와 민주주의의 핵심적 걸림돌인 국가보안법 폐지에 자유주의 정치세력, 지식인, 언론 모두 큰 관심이 없는 것도 설명하기 어렵다. 나아가 왠만한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에 다 있는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는 것에도 한국의 자유주의 정치세력이 큰 열의가 없는 것도 설명하기 어렵다.
자유주의 세력은 억압적 국가기구의 민주적 개혁을 주장하고 약속했지만, 막상 권력을 잡으면 반동적 기득권 세력의 반발에 쉽게 타협하며 물러섰고, 억압적 국가기구를 개혁하기 보다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그것을 이용하는데 더 치중했다는 게 더 진실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재명 정부가 검사 출신의 민정수석을 거듭 임명하고 정성호 법무장관이 '이재명 정부의 검찰은 다르다'는 말한 것이 반발을 산 이유도 비슷하다. 그래서 이세영 논설위원이 이 글의 처음에 레닌을 인용한 것은 너무 뜬금포였고, 그냥 멋부리는 자기 과시로 느껴진 게 사실이다.
'슬로건을 중시하던 혁명가 레닌도 구체적 상황에 맞게 구호를 수정하거나 폐기할 줄 알았다'는 뜻인 것 같지만, 지금 상황뿐 아니라 레닌의 구체적 실천과도 전혀 안맞는 말이라서다. 먼저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는 레닌과 볼셰비키에게 단순한 구호가 아닌 전략적 방향이었다.
짜르 정권을 타도한 이후 부르주아 자유주의 권력에 머무를 것인가, 노동자 농민의 소비에트 권력으로 넘어갈 것이냐의 문제였다는 말이다. 이러한 혁명의 과제와 권력의 계급적 성격의 문제를 언제든 폐기할 수 있는 구호의 문제로 설명하는 것은 무지가 아니면 왜곡에 가깝다.
따라서 7월의 불리한 상황에서 일시 보류되긴 했지만, 소비에트에서 볼셰비키가 다수가 되기 시작한 9월에 바로 이 구호는 되살아났다. 무엇보다 이 구호 자체는 레닌이 발명한 것이 아니라 볼셰비키 당원과 노동자들이 거리에서 만들어낸 것이고 그래서 쉽게 철회될 수가 없었다.
더구나 레닌과 볼셰비키의 강령과 역사를 조금만 살펴보면, 그들이 검찰과 사법 권력의 민주적 통제와 개혁을 항상 중요한 과제로 제기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검찰의 기소 독점과 면책권을 해체하고, 수사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모든 사법 관료들을 선출하자는 요구 등이 있었다.
왜냐하면 짜르 정권은 바로 비밀경찰, 검찰, 사법부, 그들과 유착한 반동언론에 의존해 러시아 민중과 사회주의자들을 탄압하던 권위주의 독재 정부였고, 레닌과 볼셰비키는 그러한 표적 수사와 기소, 독일첩자로 몰아가는 여론재판과 마녀사냥의 핵심적 피해자들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말로 '레닌에게 배워라'고 충고할 생각이면, 타협하지 말고 더 철저한 검찰 개혁을 추진하고 특히 검찰 수사권 박탈이라는 전략적 방향을 포기하지 말라고 말하는게 더 타당하다. 물론 레닌과 볼셰비키가 항상 옳지는 않았고 오늘날 비판적 재검토할 부분이 꽤 많다고 본다.
그렇기에 더 중요한 것은 레닌, 아렌트 등을 과시적으로 어설프게 인용하는 것보다, 우리 사회에서 지난 78년 동안 검찰 권력의 피해자들이 어떤 피해와 고통을 겪었고, 그것을 지켜본 시민들이 왜 그토록 거리와 광장에서 검찰 개혁을 외치고 요구해 왔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기사 등록 2026.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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