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 코민테른 초기의 당내 민주주의와 오늘날

존 리델(John Riddell)


 



[코민테른 초기에 추구했던 조직 모델이 개방적이고, 유연하고, 포괄적이었다는 것을 설명하면서, 오늘날 많은 소규모 좌파들이 추구하는 모델이 그것과 어긋나 있다는 점을 설명하는 글이다. 이런 비개방성과 경직성이 오늘날 좌파의 위기와 분열을 낳고 있다는 것이다. 이 글의 필자인 존 리델(John Riddell)은 캐나다의 사회주의자이고 코민테른 역사에 대한 탐구와 재해석으로 국제적 좌파에 큰 기여를 해 왔다. 우리는 러시아 혁명 100주년을 맞아서 이처럼 관련된 글을 지속적으로 다룰 계획이다. 번역에 수고해 준 김민재 동지에게 감사드린다.]


출처:https://johnriddell.wordpress.com/2013/02/20/party-democracy-in-lenins-comintern-and-now/

 

레닌의 시대에 공산당은 내부 규율과 민주주의의 문제를 어떻게 다루었을까?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 내부에서 지금[이 글은 2013년 초에 씌여졌고 당시 SWP는 위기와 분열을 겪었다.] 진행되고 있는 첨예한 토론은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코민테른) 처음 네 번의 대회 기간인 1919~23년 동안 보여 준 내부 민주주의의 성격에 관련된 쟁점들을 제기한다


오늘날의 맑스주의 그룹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영국 SWP는 레닌 하 볼셰비키 당을 혁명적 당 건설의 선도적 사례로 보며, 토론의 상당 부분은 이 비교를 다룬다. 하지만 혁명정당의 모델을 탐색함에 있어서, 차르 시대 러시아보다 오늘날 우리 상황과 훨씬 비슷한 상황에서 기능했던, 레닌 시대 러시아 밖 공산당들을 살펴보는 것 또한 가치 있다.

 

레닌 시대 공산주의 역사에 대한 문건 몇 권을 편집하고 영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나는 많은 국제적 행사에서 공산당 대표단들 사이에서 일어났던 논쟁들을 연구했다. 다음은 코민테른의 조직적 규범과 관련해서 이 기록이 우리에게 말해 주는 바에 대한 나의 해석이다.

 

네 가지 비교들

 

현재 영국 논쟁에서의 내부 민주주의에 대한 네 가지 쟁점들이 코민테른 기록들과의 비교점을 시사한다.

 

* 분파들과 경향들: 코민테른에는 분파 금지가 없었다. 초기 몇 년 동안 그 주요 정당들은 대부분의 기간 동안 분파로 나뉘어 있었다.

 

* 토론: 공산당 내부의 이견은 당 출간물을 통해 노동계급 앞에서 정기적으로 제기되었다.

 

* 집행위의 통일성: 모스크바에 있는 코민테른 집행위원회와 그 소규모 사무국(Small Bureau) 구성원들은 종종 세계 대회까지 이견을 끌고 갔고, 각국 지도부도 마찬가지였다.

 

* 지도부: 코민테른과 그 소속 당들의 지도부들은 선출되었고, 후보자 명부가 제안되었을 때도 그것이 수정될 수 있었다.

 

 

이 지점들 각각에 대해 순서대로 논평할 것이다.

 

분파들: 볼셰비키-코민테른 전통에서, 분파는 당면한 쟁점들을 둘러싸고 구성되는, 일시적인 구조였다. 그 쟁점이 해결되고 나면 그것을 둘러싸고 형성되었던 분파들은 보통 해산했다. 예를 들어 1921년 코민테른 제3차 대회 동안, 분열의 순간까지 온 것처럼 보였던 독일 공산당 내의 두 분파가 공통의 정치적 성명을 중심으로 합의에 도달했다. 그들의 합의 중 일부는 그 분파들이 해산할 것이라는 점이었다. 분파들은 해산했지만, 새로운 쟁점들을 중심으로 그리고 새로운 계열들과 함께 새로운 분파들이 신속하게 형성되었다.

 

토론: 코민테른은 내부 토론을 당 신문을 통해 진행함으로써 그것이 당 외부의 노동자들에게 공유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간혹 공산주의 출간물들은 소수파의 관점을 제시했다. 저명한 사례는 1920~21년 출간된 초좌익의 기관지 Kommunismus이다. 특히 1921년 독일 맑스주의자 파울 레비(Paul Levi)의 출당에 뒤이어 코민테른은 당의 통제 바깥에 있는 분파 출간물들을 못마땅해 했다. 그러나 각 당에 아주 많은 수의 출간물이 있었고 그 출간물들은 각각 고유한 편집 구조를 갖고 있었으며 이는 견해의 다양성을 촉진했다.

 

집행위원회의 통일성: 3차 대회(1921) 때 독일과 다른 중부 유럽 국가들에서 초좌익주의자들과 통일전선을 지향하는 경향 사이의 갈등은 볼셰비키 지도자들과 코민테른 집행위원회의 소규모 사무국(Small Bureau)를 분열시켰다. 대회는 결국 전체적 합의를 통해 결의안을 채택하는 데 가까스로 성공했지만 논쟁과 갈등은 대회 끝까지, 그리고 그 이후까지 지속되었다.

 

지도부: 처음에 코민테른 집행위원회 위원들은 각국 당에서 파견되었다. 1922년 처음으로 집행위원회 위원들이 전체 대회에서 선출되었다. 다양한 정당들에 의해 선택된 대표자들로 이루어진 지명 위원단이 후보자 명부를 추천했다. 명부가 대회에 제시되면 명부의 구성을 바꾸려는 수정 제안이 이루어졌고 표결에 부쳐졌다. 당 내의 선거 절차들은 다양했고, 후보자들은 종종 집단적 명부로서 제시되었다. 내가 아는 한에서는 그런 명부들은 항상 수정 제안될 수 있었고 협의회 대표자들의 표결에 의해 승인받았다.

 


, 운동 그리고 노동계급

 

나는 초기 코민테른 논쟁에 대해 읽을 때 이 네 가지 쟁점들에 대한 언급을 거의 보지 못했다. 조직적 규범에 대한 관심의 초점이 달랐는데, 이는 코민테른의 각 국가 부문의 기원과 성격으로부터 오는 것이었다.

 

제국주의 국가들의 당에는 수만 명 수십만 명의 당원들이 있었다. 또한 그 중 상당수가 소비에트 러시아에 대한 지원, 여성해방, 식민주의 반대와 같은 특정 쟁점들에서 당원들과 함께 일한 사람들이었고 넓은 동조자 층을 주변에 보유하고 있었다. 당은 광범위한 층의, 혁명적 사상을 가진 노동자들과 긴밀한 접촉을 유지하며 활동을 했다. 당과 그 주변부는 노동계급 전반에 걸쳐 영향력을 행사했다.

 

레닌 시대의 공산당들은 혁명적 사회주의 전통의 넓은 스펙트럼을 포함했다. 당원들은 배경이 다양했는데, 사회민주당에서도 왔고, 생디칼리스트였던 사람도 있었고, 혁명적 민족주의자 출신도 있었다.

 

인터내셔널의 내부 논쟁들은 전술과 전략, 그들의 실천이 주요한 영향을 주는 대상인 더 넓은 노동자 대중에게 그들의 정책이 가질 중요성의 문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당내 논쟁들은 일반적으로 전체 노동계급 내부의 사회적 차이와 대립하는 의견들을 반영했다. 노동계급 내 두 가지 축의 견해 차이가 1919~23년 시기 코민테른의 내부 활동을 지배했다.

 

첫 번째로 전쟁 이전 사회민주주의 전통에 젖어 있던 노동자들은 전쟁에 의해 앞으로 내던져진 젊고 혁명적인 세대의 도전을 받았다. 그러고 나서 전쟁 이후 혁명적 물결이 쇠퇴하기 시작함에 따라, 빨리 자본가 권력에 결정적인 일격을 가하고 싶어서 조급해하는 노동자들은, 신중해졌고 행동 통일의 필요성에 신경을 쓰는 이들과 불화하게 되었다. 노동계급 내의 이러한 불화로 인해 개량주의적인 사회민주당에 의해 생겨난 장애물을 해결하는 것과 자본주의라는 적에 맞서서 단결을 성취하는 것이 보다 어려워졌다.

 

이러한 축 사이의 견해 차이는 코민테른 처음 몇 년 동안 내부 활동을 지배했다. 소속된 정당들 내에서 노동계급의 보다 조급해하는 층 또는 보다 신중한 층의 분위기를 반영하는 분파들이 생겨났다. 전체적으로 코민테른은 그런 분쟁들에 대처하는 데 있어서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지만 분쟁들은 투쟁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들과 노동계급으로부터의 압력에 이끌려서 또 다시 일어나곤 했다. 그 결과 내부 논쟁들은 변화하는 연합과 빈번한 지도부 교체로 특징지어졌다. 예를 들어 독일 공산당은 1921년에서 1922년 사이에 지도부를 네 번 재조직했다.

 

전술과 전략에 대한 논쟁 역시 코민테른의 외연, 즉 당원들 내부에 포함된 조류들인 한쪽의 개량주의자들과 다른 쪽의 구제불능의 초좌익주의자들 사이에서 경계를 가르는 선을 규정하는 역할을 했다. 그 선을 어디에 그을지가 코민테른 활동에서의 주요 조직적 쟁점이었다.

 

1920~21, 전쟁 이후 혁명적 물결이 수그러들기 시작함에 따라서 혁명적 사상을 가진 노동자들 사이에서 조급함이 생겨났다. 그로 인해 초좌익주의에 이끌리는 세력들이 중부 유럽의 당과 심지어 (결정적인 시기 동안에) 코민테른 집행위원회에서 지배력을 얻게 되었다. 그렇지만 최후결전에 대한 이러한 호소는 계급 세력 관계와 맞지 않는 것이었다.

 

그 결과 1921년에 코민테른은 독일에서 심각한 실패를 겪었고 이는 파괴적인 분열들로 이어졌다. 그러나 그 해 동안 코민테른은 통일전선 정책의 채택을 통해 그 노선을 수정했다. 통일전선 정책은 노동계급의 단결된 행동을 위한 캠페인에 정당들을 참여시켰다.

 

행동에서의 규율

 

코민테른과 그 소속 정당들은 민주적 중앙집중주의라는 규범에 따라 실천하고자 했다. 이 용어는 결정을 내리고 지도자들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의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가, 결정된 행동 경로를 실천하는 데 있어서의 단결과 결합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오늘날에도 맑스주의자들은 상당 부분 똑같이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초기 코민테른에서는 초점이 달랐다. 주요 관심사는 관료주의와 선거영합주의(electoralism)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것이었다.

 

러시아 밖 코민테른 정당들의 주요 구성 단위들은 구 사회민주주의 운동으로부터 왔다. 이러한 구성 정당들은 개량주의 진영과 결별했지만 여전히 예전 정당의 구조와 관습의 상당 부분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들의 출신 정당들은 에너지를 주로 선거 캠페인 및 그와 관련된 교육 사업에 쏟았었다.

 

그들은 무엇보다도 의회 내 분파, 언론 기구, 그리고 동맹을 맺은 노동조합 지도부에 뿌리를 두고 있는 관료적인 고위 간부층에 의해 지도되었다. 코민테른의 민주적 중앙집중주의는 관료주의의 지배를 끊어내고자 했다. 의회, 언론 그리고 노동조합 사업을 당의 통제 하에 두고, 지도부와 평당원들을 동질적인 운동으로 통합시키고, 당으로 하여금 대중투쟁에 개입할 능력을 갖추도록 하고자 했다.

 

이러한 변화를 만들어 낼 필요성이 1921년에 조직에 대한 코민테른 결의안의 가장 중요한 주제였다. 결의안에서 민주적 중앙집중주의에 대한 장은 간부들이 평당원들로부터 유리되고, 활기 있는 협력이 형식적인 민주주의에 불과한 것으로 대체되고, 조직들이 적극적인 간부들과 수동적인 대중으로 쪼개지는정당들을 비판했다.

 

결의안은 적극적인 태도를 갖고 노동자 대중의 조직에서 당의 방침을 실행할 수 있도록 조직하려는 노선과 당원들의 의무를 강조했다. “당내에서 당의 지도 기구들과 나머지 당원들 사이에, 그리고 또한 당과 당원들 밖에 있는 프롤레타리아 대중 사이에 모두 살아 있는 연결과 상호관계를 결의안은 요청했다.

 

코민테른 대회 논의들에서, 이 대목에서 명확히 드러나는 신중한 균형이 언제나 나타났던 것은 아니었다. 철의 규율과 중앙집중화에 대한 요청이 빈번했고, 그것이 항상 다양성과 권한의 위임으로부터 나오는 강력함에 대한 인정으로 균형이 맞춰졌던 것은 아니었다. 서로 다른 접근들이 명확히 드러났다.

 

예컨대 제4차 대회에서 존경받는 불가리아 대표자였던 Vasil Kolarov일탈적인 관점은 필연적으로 기강 해이로 이어질 것임을 강력히 주장하면서 모든 큰 문제들에 대한 공통된 인식을 요청했다. 하지만 또 다른 맥락에서 레온 트로츠키는 대회에서, 프랑스에서의 분파 형성이 그 상황에서 필수적이고 건강한 대응이었다고 이야기했다. 한편 그레고리 지노비예프는 마무리 요약 발언에서 이 문제든 저 문제든 (항상) 소수 의견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다른 한편 규율의 필요성은 (오늘날도 그런 것처럼) 노동계급과 자본가 적들 사이의 충돌에서 무엇보다도 제기되었다. 이탈리아의 노동자들이 19209월에 자신들의 공장을 점거했을 때, 코민테른의 이탈리아 부문은 투쟁에 대한 권고안을 노조에서 집행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코민테른의 구성원인) 고위 노조 관료들이 투쟁을 배반하면서도 문제제기를 받지 않도록 내버려 두게 되었다.

 

다른 한편 독일에서는 선진적인 혁명적 분견대가 보다 광범위한 노동계급 세력으로부터 고립된 채 반복적으로 자본주의적 억압에 대한 무력 저항을 전개했다. 이런 사건들은 19191, 19203, 그리고 19213월의 패배를 초래했고 그 때마다 매번 공산주의 세력들은 분열되었다.

 

1921년 제3차 코민테른 당대회는 이러한 위험들 둘 다를 프랑스에서 발견했다. 프랑스 공산주의 청년단(The French Communist Youth)은 프랑스-독일 정부 간 관계에서의 위기 상황 동안 프랑스 노동자들이 개인적으로 출근을 거부하는 것을 옹호했다는 이유로 심하게 비판받았다. 동시에 공산당 지도자인 마르셀 카생(Marcel Cachin)은 의회에서, 프랑스가 영국과 제국주의적 동맹을 맺는 것에 무언가 긍정적인 점이 있다고 암시한 것에 대해 질타받았다.

 

규율에 호소하는 것은 이런 압박들에 대한 충분한 대응이 아니었다. 레닌의 코민테른은 전략 및 통일전선 방침의 개발을 통해 그러한 분열적 경향을 막아내고자 했다. 통일전선 방침의 한 측면은 다양한 노동계급 세력들이 통일된 행동에 있어서 규율을 유지할 필요성이었다.

 

그러한 문제들은 우리가 오늘날 마주하는 상황과도 크게 다를 바 없다. 예컨대 삭감에 반대하는 대규모 집회는 한쪽에서는 블랙블록(Black Bloc)’(역자: 기존의 좌파가 충분히 혁명적이지 않다는 아나키즘적 입장에 입각하여 검은 옷을 입고 집회에서 물리적 충돌을 자주 일으키는 그룹)의 방해로 인해 위협받고, 다른 한쪽에서는 노동조합 관료들의 망설임으로 인해 위협받곤 한다. 행동에서 규율의 필요성은 당규에 의해 부과될 뿐만 아니라, 모든 영역에서의 노동계급 투쟁의 일반적으로 이해되는 요구조건에 의해 부과된다.

 

오늘날의 시의 적절성

 

제국주의 국가에서, 오늘날의 맑스주의 그룹들은 레닌 시대의 그룹들보다 자릿수가 작다. 그들은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보다 깊게 뿌리 박혀 있고, 혁명이 더 멀어 보이고, 노동계급이 그 관심사에 있어서 보다 이질적이고 다양화된 맥락에서 활동을 한다. 이 모든 이유들로 인해, 오늘날의 맑스주의 그룹들이 러시아 혁명 직후 몇 년의 시기보다 더 개방적이고, 유연하고, 포괄적일 것이라고 기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은 정확히 그 반대이다.

 

여기서 부당한 희화화와 모욕적인 일반화를 피하는 것이 중요하다. 몇몇 맑스주의 그룹들은 장래성을 보여 주며, 대중운동을 건설하는 데 그리고 혁신적인 당 건설을 실험하는 데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해 왔다. 하지만 이런 그룹들 대부분이 모여서 둘러싸고 있는 모델, 우리가 소집단 맑스주의라고 부르고자 하는 패턴이 하나 있다. 이는 레닌 시대 코민테른의 모델과 극명하게 대조된다.

 

일반적으로 각 그룹의 구성원들은 맑스주의 정치적 연속체 속의 단 하나의 요소로 한정되어 있다. 그룹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쪼개지는 경향이 있다. 서로 경쟁하는 그룹들의 숫자가 늘어나는데, 각 그룹이 나머지 모두에 대한 전쟁을 한다.

 

그런 그룹들과 노동계급과의 연결은 강하지 않다. 이런 그룹들 내의 분열은 종종 계급투쟁 속에서 제기되는 문제들로부터 나오기보다는 자기들 내부의 동학으로부터 나온다. 내부 민주주의는 종종 초기 코민테른보다 덜 발전되어 있다.

 

그룹들 사이의 강령적 차이도 크지 않다. 각각의 경쟁 조류들은 주로 그 정치적 문화와 전통에 의해 정의된다. 이런 충실함은 그런 그룹들에게 보수적인 색채를 부여하며, 그들이 변화하는 투쟁으로부터 배우고, 노선을 수정하고, 다른 조류들과 단결하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그룹들은 경험을 통해 조화롭게 차이를 풀어나가는 역량을 거의 보여주지 못한다. 지도부는 효과적인 통제로부터 종종 유리되어 있고 핵심 인사들이 서로 다투는 일이 없는 한 무제한으로 유임하는 경향이 있다.

 

규율은 계급의 적에 맞선 단결보다는 회원들로 하여금 규칙을 지키게 하고 그들의 언행을 규제하는 데 더 집중한다. 성공은 계급의 승리보다는 그 그룹이 성장하고, 자원을 축적하고, 맑스주의 경쟁자들보다 앞서 나가는 것에 의해 정의된다.

 

이러한 특성들을 가장 좋게 말한다면, 어려운 정치적 조건에서 소그룹으로 존재하는 조건에 대한 진화적 적응이라고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그룹들이 이런 모델을 물리치려 하고 일정한 성공을 거두지만, 이런 모델의 압박은 그들 모두를 압도한다.

 

당연히 레닌의 시대 이래로 상황이 변화했고, 혁명정당 건설에 대한 초기 코민테른의 기록은 균질적이지 않고 결함이 있었다. 하지만 비록 레닌의 코민테른이 교과서를 제공해 주는 것은 아닐지라도,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역할은 해야 한다.

 

소집단 맑스주의자 사고방식의 한계를 극복하고 레닌 시대 공산당의 덕목들을 습득하기 시작하지 않는다면, 오늘날의 맑스주의 조직들은 소집단으로 존재하는 것의 한계를 극복하면서 혁명 운동 건설에 유의미한 기여를 하지 못할 것이다.

 

(기사 등록 2017.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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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변혁 재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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