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 우리가 레닌에 대해 말하는 거짓말들

라스 리(LARS T. LIH)

번역: 두견  


[라스 리(Lars T. Lih)는 러시아어 원자료와 구체적인 상황과 맥락에 입각한 러시아 혁명과 레닌주의에 대한 혁신적 재해석으로 주목받아 왔고, 수많은 책과 논문을 쓴 역사학자이다. 그의 대표적인 저서로는 <러시아에서 빵과 권위: 1914~1921>(1990), <레닌 재발견: 맥락에서 본 무엇을 할 것인가’>(2006) 등이 있다. 이 글에서 라스 리는 또다시 기존의 정설적 해석에 비판적 의문을 제기하면서 러시아 혁명과 레닌주의에 대한 혁신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출처: https://www.jacobinmag.com/2014/07/the-lies-we-tell-about-lenin


 



1917년의 러시아 혁명은 오랫동안 도덕적 의식을 고양시키는 데 적합한 객관적인 교훈이었다. 모든 사람들은 재앙을 초래한 도덕적,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대실수를 발견하기 위해 그것을 바라본다. 잘못을 알게 된 이상, 우리는 재앙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고, 아직 그들의 길에 놓인 잘못을 보지 못한 모든 사람들보다 우월하다는 안도감을 느낄 수 있다. 혁명의 인간적 현실, 즉 사건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압도적 감각은 우리가 서둘러 교훈과 손가락을 가리키면서 사라진다.

 

일부 사람들에게 혁명의 오류는 주로 도덕적이다. 예를 들어, 레닌은 그 밑바닥이 없는 타락으로서 러시아의 몰락에 직접 책임있는 악마의 구현처럼 묘사된다. 우리는 이것을 살인적인 환희 속에 손을 비비는 "보리스 카를로프 레닌(Boris Karloff Lenin)"이라고 부를 수 있다.[보리스 카를로프는 공포영화에서 괴물역을 자주 맡았던 배우다.] “오늘은 내가 농민들을 억압할 것 같아!" 나는 보리스 카를로프 레닌과 매우 가까운 무언가가 넓은 대중, 특히 미국에서 러시아 혁명의 지배적인 이미지가 되었다는 인상을 받는다.

 

어떤 이들은 되풀이되는 도덕적 오류의 일종으로 정의되는 "볼셰비즘"이라는 표적을 만든다. 볼셰비키들은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라는 타락한 구호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물론, 우리의 점잖은 대중들은 결코 그러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정치적 목표가 아무리 고귀하더라도 시민들을 폭격하거나 고문하는 것과 같은 용납할 수 없는 수단을 사용하는 것을 결코 지지하지 않을 것이다. 오직 무례한 광신도들만이 그렇게 한다.

 

볼셰비즘을 이용해 높은 정치적 목표를 가질 때의 위험을 지적하는 일종의 전통주의적 자유주의도 있다. 노동자들의 천국을 만들고 싶은가? 목표의 고귀함이 끔찍한 범죄로 이어지지 않도록 주의하라. 러시아 내전 기간 동안, 사람들은 가장 초보적이고 피할 수 없는 질문들, 즉 누가 나라를 통치할 것인가를 놓고 싸우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나라를 다시 하나로 만들 수 있을까? 러시아는 국가로서 살아남을 것인가? 우리의 자유주의자들은 이 모든 혼란을 보고 설교한다: , 이제, 완벽한 사회에 대한 꿈에 사로잡히지 마라! 안전하고, 분별있고, 냉철한 정치로 우리처럼 행동하라. 중용, 모든 것에서 중용!

 

좌파는 단지 혁명의 치명적인 오류를 찾아내는 것에 중독되어 있다. - 좌파만이 이데올로기적 교리에 실수의 책임을 돌리는 것을 선호한다. 좌파의 많은 사람들은 볼셰비즘의 원죄가 <무엇을 할 것인가>에 나타난 레닌의 수정주의였다는 자유주의/보수주의의 견해에 동의한다. 이러한 견해에 따르면 레닌은 노동자들을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에 마르크스를 그의 머리 위에 올려놓았고, 지식인을 기반으로 한 엘리트적 음모주의 당을 만들었다. 그가 러시아 혁명의 민주적 강령을 가로챈 것은 당연하다.

 

오류를 찾아내서 비난하는 것에 덜 집착하는 접근방식은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어떤 이데올로기적 혁신의 혐의도 제기하지 않으면서 그 의미를 본다. 레닌의 1902년 책은 지하조직의 논리를 이상화한 버전의 요약정리로서, 1890년대 한 세대의 익명의 활동가들에 의한 경험적 시행착오를 통해 해결된 논리다. 이와 같이 레닌의 기본 모델은 러시아에서 지하에서 활동하는 모든 사회주의자에 의해 가이드로 받아들여졌다. 1917년에 와서 만들어진 볼셰비즘의 특성은 이러한 당 조직 모델에서가 아니라 당시 러시아의 계급세력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되었다.

 

사회주의 지하조직의 건설은 레닌이 한 것이 아니었다. 아니, 그의 기여는 대수롭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결정적인 것도 아니었다. 1917년에 러시아 국가가 붕괴했을 때 - 어떤 이데올로기로도 그 엄청난 결과를 예측할 수 없었던 사건 - 이 지하조직은 새로운 주권과 새로운 국가 구조를 만들 수 있는 몇 안 되는 세력 중 하나를 제공했다.

 

짜르 전제정의 러시아 법률 기관들은 군주정의 붕괴로 치명상을 입었다. 반면, 불법 지하조직은 온전하게 살아남았고, 전국적인 범위와 대중의 지지와 정당성을 가진 그럴듯한 주장을 지니고 있었다. 사회주의적 지하조직은 이데올로기적 책략이라기보다는 훨씬 더 러시아의 역사적 산물이었다. 지금까지 나는 혁명의 실패를 설명하는 요지들의 오류를 살펴봤지만, 10월 혁명의 마지막 열성 지지자들은 이단 사냥에도 매달리고 있다. 이들에게 혁명의 성공은 이데올로기적 오류의 거부에 의해 설명된다. 주류 트로츠주의자들의 해석은 이런 유형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이 이야기에 따르면 1905~6년으로 돌아가서, 레온 트로츠키가 그의 연속혁명 이론을 생각해냈고 후진적인 러시아에서도 사회주의 혁명이 가능하다고 선언했다는 것이다. 그의 이론이 "2 인터내셔널 마르크스주의"의 상상력이 결여된 도그마들을 공격했기 때문에 트로츠키는 보편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겪었다. 19174월에 다행히 때마침 레닌은 빛을 보았고 트로츠키를 따라잡았다. 그리하여 이 두 위대한 지도자는 함께 볼셰비키 정당을 재무장시켜서 영광스러운 10월 혁명을 가능케 했다.

 

이 정설적인 이야기에는 많은 난점들이 있지만, 여기서 나는 이 '10월 이야기'에서 한 가지 이상한 점을 지적할 것이다: 그것은 명백한 반볼셰비키적 색채를 띠고 있다. 트로츠키주의 전통의 많은 작가들에 따르면, 낡은 볼셰비즘의 교리는 혁명적인 승리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그 전에 거부되어야 하는 치명적인 오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통의 작가들은 우리에게, 전체적으로 볼셰비키들이, 그들의 총명하고 선견지명이 있는 지도자들이 전진할 때조차, 어제 그들이 들은 것에 완강하게 매달리고 있던 둔해빠진 사람들이었음을 끊임없이 상기시켜 준다.

 

볼셰비키 지하 운동가들에 대해 좋은 말을 한 나를 아직도 용서하지 못하는 일부 작가들의 이런 반볼셰비키적 분위기가 뚜렷하다. 나는 이 활동가들이 레닌이나 트로츠키와 같은 망명 지도자들의 지혜에 귀를 기울이지 않은, 따분하고 숨막히는 코미테치키(komitetchiki: 간부들)’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 그러나 내가 보기에 이 모든 접근은 어떤 혁명적 영웅들의 "인격에 대한 추종"의 냄새가 너무 많이 나는 것 같다. 10월혁명을 좋아하는 트로츠키주의자들조차 혁명의 궁극적인 결과에 만족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고, 늘 그렇듯이 그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 교리적 오류를 찾는다.

 

러시아 혁명을 구하기 위한 데우스 엑스 마키나’[한 번에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 역할을 해야 했던 유럽혁명이 많은 부분 카우츠키와 제2 인터내셔널 지도자들의 "숙명론적", "기계적", "결정론적"이고, 단지 일반적으로 "변증법적이지 않은" 마르크스주의 때문에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러시아에서 혁명의 내적 타락의 외형적이고 가시적인 징후는 "일국 사회주의"라는 교리적 이단이라는 것이다. 물론 러시아 혁명에 대한 많은 영리하고 필수적인 통찰은 트로츠키주의 전통에서 나온다. 그러나 나는 이 전통의 저술가들이 종종 그것을 살아낸 사람들이 경험한 러시아 혁명의 인간적 현실보다 그들의 교리적 추상화에 더 관심있다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러시아 혁명에 대한 한 가지 핵심 논쟁이 항상 있다: 러시아는 사회주의 혁명을 위한 준비가 되어 있었는가, 아니면 단지 "부르주아 혁명"을 위한 준비가 되어 있었는가? 볼셰비키는 전자를, 멘셰비키는 후자의 위치를 유지했다. 그 토론에서 누가 옳았고, 누가 틀렸는가? 멘셰비키의 말이 맞다면 10월 혁명은 실수였다. 만약 볼셰비키가 맞다면, 멘셰비즘은 반혁명적 오류로 거부되어야 한다.

 

이러한 접근방식은 한 가지 점에서 옳다: 멘셰비키와 볼셰비키들은 1917년에 그들의 논변에서 이러한 마르크스주의적 개념에 의존했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교리적 논쟁은 그 문제의 핵심과는 거리가 멀었다. 사실, 그것은 1917년 러시아에 대한 경험적 독해를 바탕으로 입장에 교리적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시도로, 본질적으로 나중에 추가된 것이었다.

 

사회주의 정당들이 직면하고 있던 진짜 질문은 이것이었다: 러시아 사회를 집어삼킨 위기가 교양있는 사회와의 협력으로 해결될 수 있을까, 아니면 해결책이 배타적으로 민중, 노동자, 농민만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주권적 권위를 요구했을까? 러시아어로 번역된, 1917년 논쟁의 중심이었던 질문은 다음과 같았다: 새로운 vlastsoglashenie에 바탕을 둘 수 있고 또 그래야 하는가?

 

Vlast"소비에트 권력"과 같은 "주권적 권위" 또는 "권력"을 의미한다. soglashenie는 종종 "타협"이나 "조정"으로 번역되지만, 이 단어는 그보다 더 강한 어떤 것을 의미한다. 어떤 종류의 약속이나 합의에 기초하여 함께 일하는 것이다. 1917년에, 이와 같은 질문에 대한 멘셰비키와 볼셰비키의 본질적인 충돌은 교조적인 것이 아니라 경험적인 것이었다. 더욱이 한쪽이 틀렸고 다른 한쪽이 옳았다고 말할 수도 없다. 양측 모두 통찰력과 희망적인 사고를 결합했다.

 

우리가 러시아의 경험적 현실을 다루고 있다는 것을 상기하면서, vlastsoglashenie라는 용어를 사용해 1917년 멘셰비키/볼셰비키의 충돌을 다루면서 또한 교리적 분쟁을 적절한 부차적 위치에 놓으려고 노력해보자.

 

멘셰비키: 교양있는 사회와의 어떤 종류의 합의(soglashenie)는 불가피하고, 따라서 합의지점을 찾을 수 있도록 이것에 적합한 "부르주아" 파트너는 찾아져야 한다. 게다가, 러시아인들은 "부르주아 혁명"에 직면해 있고, 따라서 우리는 "부르주아" 임시 정부를 관용해야 한다.

 

볼셰비키: 교양있는 사회와의 합의(soglashenie)는 불가능하며, 따라서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는 혁명의 책임을 떠맡을 준비를 해야 한다. 게다가 러시아는 "사회주의를 향한 발걸음"을 할 준비가 되어 있다.

 

어느 경우든 우리는 교리적 통찰이나 오류가 아니라 1917년 러시아 사회에 대한 강력한 감각과 본질적으로 올바른 경험적 관점에서 출발한다. 멘셰비키는 한편으로는 현대사회가 교육받은 전문가와 전문직들 없이는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가 고립된 상태에서 권력을 행사할 만큼 조직화돼 있거나 "목적의식적"인 것이 아니며, 러시아 농민은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위한 안전한 기반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볼셰비키들은, 겉모습과 달리 교양있는 엘리트 사회가 결코 "혁명의 목표"(그것이 엄격한 "민주적" 개념으로 정의되고 있을 때에도)를 성취하기 위해 열성적으로 일하지 않을 것이며, 실제로 교양있는 사회는 결국 혁명에 역행하여 일종의 "부르주아의 독재"를 위해 일하게 될 것임을 깨달았다 - , 자유주의 정치인과 군인의 어떤 동맹관계, 또는 러시아에서 보자면 카데츠(자유주의 입헌민주당)와 코르닐로프(1917년에 무산된 쿠데타 시도를 주도한 장군)의 동맹관계 말이다.

 

멘셰비키와 볼셰비키 모두에게 올바른 경험적 관점은 현실보다 희망적 사고에 바탕을 둔 사실에 대한 주장으로 이어진다. 멘셰비키들은 부르주아 사회에서 혁명의 목표를 달성하기에 적절한 파트너가 발견될 수 있다고 주장해야만 했다.(또는 적어도 교양있는 사회가 "아래로부터 압력"에 의해 협력하도록 괴롭힘을 당할 수 있다고)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면 심사숙고하기에는 너무 끔찍한 상황이었다.

 

볼셰비키들은 오로지 프롤레타리아트가 계급권력을 주장하기만 한다면 사회변혁과 위기관리라는 어마어마하고 복잡한 정책들이 거의 고통 없이 수행될 수 있다고 주장해야 했다.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면 심사숙고하기에는 너무 끔찍한 상황이었다. 각각의 경우 경험적으로 선택된 전략에 마르크스주의 교리의 정당성을 부여하려고 하는 삽입적 추가물들이 있었다.

 

그러나 사실 멘셰비키들은 '부르주아 혁명'과 같은 교리적 꼬리표 때문에 그들의 전략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였다. 그들은 러시아가 부르주아 혁명에 직면했다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부르주아지" , 교육을 받고 훈련된 전문가들을 내치기 싫었기 때문이다.(나중에 볼셰비키들도 자신들이 얼마나 그들을 필요로 하는지 깨달았을 때 그들을 불렀듯이)

 

그리고 볼셰비키는 먼저 러시아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가능하다는 교리적인 이유로 자신들을 납득시켰기 때문에 그들의 전략을 선택한 게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였다: 그들은 프롤레타리아트들이 권력을 장악해야 한다고 느꼈기 때문에 즉각적으로 "사회주의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나중의 관찰자들은 교리적 정당화를 위한 수사적 제스처를 문제의 핵심으로 삼는 경향이 있었다. 사실 1917년에 교양있는 사회와 함께 합의(soglashenie)하느냐에 대한 태도가 문제의 핵심이었다. 본질적으로, 사회주의자들에게는 오직 두 가지 선택만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합의에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였다.

 

멘셰비키와 볼셰비키는 이 두 가지 선택의 이름일 뿐이었다. 그러나 1917년 러시아의 비극은 그러한 합의(soglashenie)가 불가피하면서도 동시에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그 상황은 사실 끔찍했다. 정면으로 똑바로 쳐다보기에는 너무 끔찍했고, 생각하기에도 너무 끔찍했다. 이에 따르면 러시아 혁명은 오류를 저지르느냐 피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받아들일 수 있는 해결책이 없는 비극이었다. 그것이 바로 비극의 본질이다.

 

그러나 멘셰비키와 볼셰비키의 충돌에 대해서는 한 가지를 더 말할 필요가 있다. 각각은 오류와 통찰력의 복합체였다. 그러나 멘셰비키의 경우 이 조합은 마비를 초래했다. 볼셰비키의 경우 이 조합이 그들을 일으켜서 행동하게 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그것이 좋든 나쁘든 미래는 볼셰비키에 속했다.

 


 (기사 등록 20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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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변혁 재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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