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 국제 - 버니 샌더스와 ‘민주적 사회주의’/ 인도

전지윤

 





버니 샌더스와 민주적 사회주의의 꿈

 

요즘 보면 버니 샌더스의 대선 도전이 또다시 미국 민주당 내부 경선의 문턱을 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영국에서 제레미 코빈의 총선 패배에 이어서 국제적 좌파들에게는 우울하고 안 좋은 소식이다. 물론 그렇다고 샌더스의 이번 도전이 무의미했던 것은 아니고, 벌써 포기하자는 말도 아니다.

 

먼저 샌더스는 민주당 언저리에서 머물러 온 재산도 많은 부자에다가, 제국주의에도 타협해 온 진짜 사회주의자도 아니다라는 식의 태도와는 선을 긋고 싶다. ‘거봐라 내가 뭐라고 했냐, 자본가 정당인 민주당에서 변화를 시도한 것부터 틀려먹었다. 애초에 기대나 시도를 말 것이지라는 식의 태도는 자기만족은 될지 몰라도 현실에 발을 딛고서 사람들과 함께 변화를 만드는 데는 의미가 없어 보인다.

 

당연히 민주당의 계급적 한계와 역사적 문제점을 찾자면 끝도 없고, 공화당도 아니고 민주당도 아닌, 3의 대안이 필요하다는 방향이 옳다. 그러나 그 과정과 경로를 한가지로만 정해놓고, 그 외의 시도는 모조리 원칙을 져버린 배신취급하는 것은 동의되지 않는다. 전술(더구나 선거 전술)이란 모든 구체적 상황마다 구체적으로 고민돼야 하는 것이지, 언제 어디서나 미리 정해진 정답이란 있을 수 없다.(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물론 지금 가장 비판하고 싶은 것은 민주당 주류, 그들과 긴밀히 연결된 대기업주와 권력자들, 주류언론들이다. 이들은 샌더스보다는 차라리 트럼프라는 심정인지, 바이든보다 그나마 낫다는 후보들까지 다 사퇴시키면서 필패의 카드라는 바이든으로 결집해 샌더스를 주저앉히려 해 왔다.

 

주류언론들의 샌더스에 대한 공격도 심각했는데, 특히 샌더스가 초기에 바람을 일으키기 시작하자, 샌더스 열성 지지자들에 대한 공격과 마녀사냥이 심각했다고 한다. 그들이 증오와 광기에 휩싸여서 여기저기서 샌더스의 반대 쪽을 물어뜯고 괴롭히고 다니는 폭력적인 무리들이라는 식이었다.(소위 문빠에 대한 조중동의 공격과도 유사성이 있었다.)

 

당연히 샌더스의 수많은 지지자들 속에서는 이상하고 과도한 언행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러나 그런 몇몇의 사례를 가지고 샌더스 지지자 전체가 이상한 무리들인 것처럼, 나아가 샌더스 자체가 문제가 많은 후보인 것처럼 몰아가는 것은 다른 문제다. 본질은 주류언론과 엘리트 전문가들을 따라가기보다,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며 열정적으로 바닥에서 좌파 후보와 아젠다에 대한 바람을 일으켜가는 사람들이 싫기 때문이었다.

 

반면 이런 아래로부터 열정적 흐름이 없고 주류언론들의 눈치만 봤다면 샌더스가 얼마전 유세에서 이란, 칠레, 과테말라 등에서 미국은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들을 전복시킨 것에 책임이 있다'고 연설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민주당 후보자의 입에서 미국 제국주의의 죄과를 인정하는 발언이 나온 것은 전례없는 일이었다.

 

이제, 샌더스가 이길지도 모른다는 초기의 흥분은 급속히 꺼진 상황이다. 냉철한 현실 직시보다는 과도한 기대와 섣부른 낙관이 있었다고 나부터 솔직하게 돌아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샌더스가 너무 급진적이어서 중도표를 잃었다는 평가는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 엘리자베스 워렌의 주변화는 급진과 중도 모두를 어정쩡하게 만족시키려던 시도의 한계를 보여줬다.

 

그보다는 기층과 현장 조직력의 한계라는 평가가 더 설득력있다. 이것이 돈과 언론과 주요 네트워크를 다 쥐고 있는 민주당 주류에 맞설 유일한 무기였는데 여기서 힘의 한계가 있었다는 것이다. 예컨대 샌더스를 지지하는 DSA(미국민주적사회주의자들)가 몇 년 만에 열배 가까이 성장한 것은 고무적이지만 그 규모는 아직 6만여명에 불과하다. 미국의 인구 규모나, 유럽의 진보정당 당원수에 비교하면 이것은 결코 과장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그래서 특히 남부와 교외로 갈수록 현장 조직력의 열세는 두드러졌다고 한다. 히스패닉에서는 어느 정도 기층 조직화가 이뤄졌고 성과로 나타났지만 흑인에서는 기층의 교회나 동네에서 긴밀히 연결된 네트워크에 다가가지 못했고, 그것이 흑인 유권자 속에서 아쉬운 결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노조에서도 민주당 주류와 연결된 노조 상층부의 통제력을 충분히 넘어서지 못했다. 미국노총AFL-CIO, 자동차노조UAW, 서비스연맹SEIU, 운수노조Teamsters 등의 지도부는 샌더스 지지를 선언하거나 조직하지 않았다. 대학캠퍼스와 도시를 넘어서지 못한 조직력은 청년학생 속에서의 압도적 지지와 대비되는 50대 이상에서의 큰 열세에서도 볼 수 있다.

 

코로나19라는 강력한 변수의 등장으로 섣불리 판단하기 어렵지만, 만약 결국 바이든이 승자가 된다면, 아마도 많은 샌더스 지지자들이 대선에서 기권하게 될 수 있다. 일부는 사회주의자이자 노동운동가 출신인 녹색당의 호킨스(Howie Hawkins) 후보에게 투표할 것이다. 그 상황에서 DSA 등이 바이든을 지지하며 선거운동에 조직적으로 참가하는 것은 적절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의 재선이라는 악몽이 너무 끔찍해서 바이든을 불가피하게 지지하겠다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을 무조건 비난, 조롱하거나 벽을 세우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고 본다. 투표 전술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런 사람들과도 손잡고 트럼프에 맞서는 운동을 건설하고, 그 운동을 좌파적 대안 건설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누가 미디어를 소유합니까? 누가 경제를 소유합니까? 누가 의회를 통제합니까? 왜 억만장자에게는 세금 감면을 하고 최저임금은 인상하지 않습니까? 지금은 적극적으로 행동할 때입니다. 미국을 기업과 엘리트들의 탐욕과 부패의 나라가 아니라 서로를 돌보는 나라로 만들 때입니다.”(얼마전 선거유세에서 샌더스의 연설)

 

지금, 코로나 사태 속에서 존재감이 갈수록 줄어드는 바이든이 아니라, 이런 가슴 뛰는 연설을 하던 샌더스가 모두를 위한 무상의료를 말하며 트럼프와 정면으로 맞서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도 기층 속에서 민주적 사회주의의 대안을 토론하고 새로운 희망을 건설하려는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아래는 미주한인 유권자들 속에서 샌더스 지지를 건설하면서 만든 영상으로 보인다. ‘지쳐도 포기할 수는 없다. 함께 우리의 미래와 희망을 건설하자는 노래말이 인상적이다. 미국의 좌파 활동가들을 지지하고 응원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bir_QQxdclE

 

버니 샌더스의 아쉬운 퇴장

 

버니 샌더스가 결국 퇴장하고 말았다. 지난주에 <미디어오늘>에 버니 샌더스에 대한 글을 쓰고 기고(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6248)할 때만 해도 혹시나하는 기대가 있었다.그러나 어제 밤에 쓰라린 소식이 들려왔다. 샌더스와 그가 퍼트리는 희망을 코로나보다 더 큰 위협이라고 했던 미국의 기득권 세력은 결국 임무를 완수했다.

 

이번에 코로나19는 미국 자본주의의 민낯을 드러냈다. 지금 상황은 흔히 전시에 비유되는데, 아룬타티 로이는 최근에 이렇게 지적했다. ‘이것이 정말 전쟁이었다면, 누가 미국보다 더 잘 준비했을까? , 스마트 폭탄, 벙커 버스터, 잠수함, 전투기, 핵폭탄은 넘쳐난다. 그러나 마스크와 장갑과 인공호흡기는 부족하다.’

 

하루에 1000명이나 사망하고, 관이 부족해서 시체가방에 담는다. 의료를, 삶과 사회를 시장과 이윤논리에 맡긴 결과다. 그리고 이것은 턱없이 부족한 인공호흡기를 서로 가져가기 위한 입찰경쟁이 벌어져 가격이 급속히 치솟는 웃픈 현상으로도 나타나고 있다.

 

코로나 이후 미국은 또다시 나오미 클라인이 <쇼크 독트린>에서 말한 재난 자본주의의 시나리오대로 더 강력한 신자유주의와 긴축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지 모른다. 샌더스를 밀어낸 조 바이든과 민주당 주류가 익숙하게 잘할만한 일이다.

 

그러나 트럼프는 좀 다를 수 있다. 트럼프의 브레인인 스티브 배넌은 최근 중국과 협력해 온 세계화 엘리트들과 기업의 탐욕을 비난하면서 백인 하층민들을 위한 최저임금 인상과 기본소득을 주장했다고 한다. 우익 포퓰리즘과 경제민족주의의 결합이다. 어느 것도 길이 아니다.

 

지금 미국에서 사망자의 70% 가까이가 흑인이라고 한다.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보다 2배나 더 많은 사망률이다. 인종과 계급의 교차 속에서 흑인들은 더 가난하고, 더 낙후한 시설과 공간에서 살고, 더 의료 접근권도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번에 샌더스에게 강력한 지지를 보내준 히스패닉은 미등록 이민자들이 많아서, 병원에도 못가고, 제대로 실태 파악도 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 코로나 비상사태 속에서 사회적 필수유지 업무로 지정된 곳에서 일하는 많은 이들은 바로 이민자들이고 다인종 노동자들이다. 미국 사회를 지탱하는 가장 필수적인 곳에서 일해왔고, 트럼프의 혐오 선동과 추방 위협에 시달려 왔던 그들이 지금 바이러스의 위험 속에서도 일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꿈을 포기하지 않는 한 샌더스가 그 대변자였던 민주적 사회주의의 희망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인도에서 벌어진 반무슬림 인종학살

 

지난달 인도의 델리 지역에서 끔찍한 인종주의 학살극이 벌어졌다. 많은 언론이 힌두교-무슬림의 충돌이라는 식으로 보도하지만 힌두교도들이 무슬림을 일방적으로 공격하고 죽음에 이르게 했다. 무슬림 가정, 사업장, 예배 장소가 표적이 됐고, 힌두교도들이 그런 장소로 쳐들어가 무슬림을 상대로 칼을 휘두르고 총을 쏘고 돌을 던지고 불을 질렀다. 사망한 많은 무슬림이 흥분한채 달려드는 사람들을 보고 공포에 질려서 도망가다가 건물에서 추락해서 죽었다. 85세의 할머니는 집에서 산채로 불에 태워져 죽었다.

 

모디 총리의 집권당 BJP가 지난해 5월 총선에서 힌두민족주의와 이슬람혐오를 선동하면서 승리해 재선에 성공한 것이 출발점이었다. 이어서 모디 정부는 무슬림을 인종차별, 인종청소해서 강제수용소에 가두려는 내용이 담긴 시민권법을 만들었다. 여기에 대한 거대한 저항과 파업 등이 벌어져 왔고, 거리 농성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 덕분에 지난해 연말과 최근에 있었던 지방의회 선거에서는 BJP가 연달아 패배하는 중이었다. 특히 이번에 학살이 벌어진 델리에서도 최근 선거에서 BJP는 좌파 성향의 AAP에게 완패했다. AAP는 반무슬림 선동과 편가르기가 아니라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에 대한 복지 확대 등을 공약하면서 승리했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의 인도 방문이 하나의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인종주의와 반무슬림에서 모디와 손발이 잘맞는 트럼프의 방문과 인종주의 선동의 연설이 인도의 인종주의 신나치들에게 자신감을 불러준 것이다. 그리고 223, BJP 소속 지역 정치지도자(카필 미샤라)의 혐오와 폭력 선동 발언이 신호탄이 됐다고 한다. 이어서 나흘간 여기저기서 피가 흘러넘치는 유혈극이 벌어졌다.

 

BJP와 연결된 파시스트 행동부대인 민족애국운동’(RSS)의 대원들이 이 폭력살인들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경찰은 수수방관했고, 폭도들은 자신들이 국가적 과제를 수행하고 있다는 믿음으로 가득찼을 것이다. 당연히 모디나 BJP나 트럼프 등은 이런 행동과 결과를 자신들은 바라거나 지지한 적이 없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무슬림을 동등한 시민으로 대접할 가치가 없는 증오의 대상으로 몰아세워온 장본인들이다.

 

지난해 연말에 영화 <증오>(Wolyn)를 봤었다. 그 영화는 2차대전을 배경으로 해서 폴란드 볼히니아 지역에서 폴란드인, 우크라이나인, 유대인들이 어떻게 서로를 죽고 죽였는지 공포스럽도록 생생하게 보여준다. 가톨릭과 그리스정교라는 종교적 차이가 어떻게 갈등으로 이어졌고, 정치 종교 지도자들이 어떻게 서로에 대한 혐오를 부추겼는지 보여 준다. 영화는 처음에 폴란드 여성과 우크라이나 남성의 행복하고 흥겨운 결혼식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때 만해도 같은 마을의 폴란드인과 우크라이나인들은 너나없이 같이 어울리고 춤을 추고 술을 마신다. 그래서 영화가 갈수록 비극의 참혹함은 더해간다. 지금, 누군가를 불신하고 증오하도록 부추기는 사람들은, 어떤 인간이나 인간들의 결함과 문제만을 부각하며 괴물로 몰아가면서 비인간화하고 타자화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멈추고 돌아볼 필요가 있다.


(기사 등록 202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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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변혁 재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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