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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세상읽기 - 미국 대선/ 영국 노동당/ 차별과 돌봄/ 질병권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20. 11. 8.

트럼프가 OVER 되기 바라는 미국 대중들의 맘

 

박철균

 

1. 아주 옛날 대학을 다니던 시절에 정외과 쪽 교수들은 상당수가 한국이 미국 같은 양당제 시스템으로 굳어지기를 바랐었다. 보수적인 관점에선 두 거대 정당이 서로 견제하는 시스템이 안정적인 민주주의 시스템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 현재 미국 대선을 보면 벌써부터 대선 불복에 무장 폭동설, 이에 따른 트럼프 계엄령설까지 모락모락나고 있는 미국의 시스템을 보며 다시 한 번 그 교수님들에게 "이런 나라"가 과연 민주주의 정답인가요? 라고 다시 묻고 싶어진다.

 

2. 그렇다고 미국을 보면 한국은 낫지 하면서 국뽕을 마시고 싶지도 않다. 이미 우리는 3년 전 탄핵 정국에서 탄핵이 헌법재판소에서 통과되지 않았을 경우 계엄령은 물론이고, 군인들까지 동원하여 반대의 목소리를 끔찍하게 짓밟으려는 시도를 본 바 있다. 더군다나 관련된 사람들은 제대로 처벌이 되었다는 소식도 듣지 못하고 그냥 묻혀 버렸다. 민주당-국민의힘 이렇게 꼭 양당 구도라고 할 수는 없는 한국 정치라고 생각하지만, 두 거대양당 모두가 현재 보여주는 모습은 노답의 극치다. 현재 여러 쟁점에서 두 정당 모두 제대로 자신에게 책임지는 모습은 보기 힘들다. 이것은 정치에 대한 냉소를 계속 가져 온다.

 

3. 문재인 지지자 중에 트럼프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꽤 많아서 놀랐다. 바이든은 호전적인 사람이고, 트럼프는 그래도 김정은이랑 대화를 했었다는 것 때문에 바이든보단 트럼프가 그래도 문재인의 대북정책에 더 가깝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나는 그런 판단이 상당히 나이브하고 그냥 달콤한 꿈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바이든이건 트럼프건 사실 대북 문제를 비롯한 동아시아 문제에서 제대로 평화를 추구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베트남에서 제대로 깽판이 난 이후로는 이렇다 할 성과도 없을 뿐더러, 주한미군 주둔비 관련해서 끊임없이 인상하겠다고 겁박을 했고(개인적으로는 그럴 바엔 이젠 나가달라고 말하고 싶지만), 북한을 넘어 중국과의 문제에서도 동아시아를 불안정하게 만든 사람인 건 뉴스를 조금만 검색해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누가 미국의 대통령이 되든 간에 얼마나 한국 정부가 그 가운데서 잘 중재하고 외교를 리드하냐가 달렸지만, 솔직히 문재인 정부는 북한, 중국, 일본 주변국을 둘러싼 외교 정책들이 언제 깨질지 모르는 살얼음 같아서 끊임없이 허점이 나오고 비판받는 상황인지라 그리 낙관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4. 미국 리버럴이 샌더스가 아닌 인종차별 논란에 성폭력 논란까지 있는 분을 기어코 후보로 만들었고, 결국 트럼프냐 바이든이냐 이런 구도가 아니라 트럼프냐 아니냐 구도만 되어서 결국 트럼프만 부각되는 구조가 이렇게 쫄깃쫄깃한 미 대선 정국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트럼프가 만들어 놓은 4년이 전세계 코로나확진자 20퍼센트가 미국에서 나오고 있고 백인 10대가 시위에서 목소리 외치는 흑인을 쏴 죽이는 참극을 만들어 내는 야만의 4년이었기에 미국에서 수많은 대중들이 바이든을 지지하는 모습은 공감이 된다. 트럼프가 이제 OVER 되기 바라는 미국 대중들의 맘이 이뤄지길 빈다. 그 승리와 자신감이 있다면 바이든이 나중에 실책을 하든, 혹은 미국 정치 시스템을 변화를 주든 그런 변화의 힘들이 계속 만들어 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미국 대선 평가 - 혐오정치를 넘어설 좌파 대안의 필요성

 

전지윤

 

개표 초기에 트럼프가 재선될 가능성에 대한 언급이 나오던 순간에 미국에서 진보와 개혁을 바라는 보통 시민들의 심정이 어떨지 생각해 봤다. 아마 이명박 5년이 끝나고 박근혜 5년이 시작될 때의 우리의 심정과 비슷했을 것이다. 결국 다시 트럼프 재선 실패로 가닥이 잡혀가고 있지만 아직도 약간의 불확실성은 남아있다. 트럼프는 부정 선거를 주장하며 무더기 소송으로 가고 있고, 결과에 불복하는 트럼프 지지자와 극우 자경단들의 폭력적 무장행동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돈 선거, 간선제, 가난한 유색인들에게는 더 까다로운 유권자 등록, 몇 킬로를 몇 시간이나 줄서서 하는 투표, 주먹구구에 중구난방인 선거 관리, 승자독식을 통한 표의 등가성 훼손, 힘과 억지 소송으로 뒤집을 수 있는 선거 결과 등은 미국식 민주주의라는 게 얼마나 엉터리이고 진정한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것인지 다시 보여주고 있다.

 

한두 번도 아니다. 이미 2000년에도 투표에서는 앨 고어가 사실상 이겼지만, 부시 쪽이 플로리다에서 난동과 억지를 부려서 결국 대법원 판결로 권력을 가져갔다. 4년 전에 클린턴도 유권자 총투표에서는 트럼프보다 300만표나 더 얻었지만, 이 희한한 간선제 때문에 트럼프에게 권력을 내주었다.

 

이번에는 4년전 같은 방식이 통하기에 어려울 것으로 보이자 트럼프는 2000년 방식을 재활용하려고 한다. 난장판을 만들면서 정치 폭력과 카오스 상황에 대한 위기감을 고조시켜 결국 법원과 민주당의 굴복을 받아내는 방식 말이다. 2000년에 그 깽판을 주도했던 로저 스톤이 지금 트럼프 비선캠프의 핵심이기도 하다.

 

이런 선거 제도와 방식을 민주주의에 맞게 바꾸는 게 너무 당연해보이지만, 결사 반대하는 공화당은 물론이고 그동안 민주당도 큰 의지가 없었다. 내부 경선에서 비슷한 방식으로 버니 샌더스를 밀어낸 게 민주당 주류다. 다양한 인종의 기층 민중들의 의사를 최대한 민주적으로 반영하는 것에 양당의 기득권 세력과 미국 지배계급 일반이 큰 열의가 없는 것이다.

 

그럴수록 기층 민중의 요구에 민감한 제3의 정치세력이 등장할 여지가 커질테니 말이다. 그러나 이 이상한 구조 위에서 그럭저럭 권력을 주고받아 왔던 양당의 주류도 이것이 트럼프의 깽판에 이용되는 상황에는 상당히 당혹스러울 것이다.

 

물론 트럼프의 선거불복 쿠데타가 성공할 가능성은 아직 크지 않다. 그것을 위해 필요한 공화당 기존 주류, 군부, 거대 언론과 자본들의 지지와 협력이 안보이기 때문이다. 그 길이 미국의 체제 안정과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해서 불가피하다는 그런 공감대는 아직 별로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4년간의 그많은 악행과 코로나 대재앙까지 낳은 트럼프가 개표 초기에 아슬아슬한 상황(투표수에서는 이미 4백만 표나 뒤졌지만)을 만들어낸 것은 놀라운 점이 있다. 이것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낳은 실업, 가난, 양극화, 소외가 어떠한 정치적 위험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보여주는 극명한 사례다.

 

트럼프는 불만과 분노에 찬 사람들 속에서 공포와 불안을 자극하고 혐오와 적대를 선동했다. 쇠락한 공업지역과 지방 변두리의 백인, 남성, 노년층(이나 라틴아메리카에서 좌파 정부를 피해온 반공 이민자층) 속에서 경제민족주의, 극우적 복음주의, 소수자 혐오 선동을 펼쳐 왔다. 바이든을 친중국 빨갱이로 몰아가며 법과 질서를 회복해야 한다는 프레임을 강화했다.

 

교회의 영향력이 크고 극우 라디오 방송이나 유튜브가 인기인 지방 변두리에서는 이게 특히 잘 먹혔다고 한다. 트럼프가 결국 이번에 백악관에서 방을 빼더라도 이런 기반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거리에서 더 위험하게 발전할 수도 있다. 티파티에서 트럼프로 변형 발전해 온 극우적 혐오 정치가 다음에는 또 어떤 형태로 업그레이드될지 모른다.

 

트럼프의 선동이 더 효과적으로 먹혀든 것은 바이든의 존재 때문이었다. 공화당의 일부, 대다수 주류언론과 대자본가들의 압도적 바이든 지지는 그에게 오히려 독이 됐다. 그럴수록 바이든은 기득권 엘리트를 대표하고 우리에게 관심이 없다는 트럼프의 말이 더 그럴듯해졌다.

 

실제로 바이든은 미국 지배계급 주류의 전통적인 신자유주의 정책과 제국주의 패권 정책을 대변하고 제시해 왔다. 바이든은 코로나 대재앙 속에서도 샌더스의 전국민의료보험 정책을 이어받지 않았다. 바이든은 월스트리트, 실리콘밸리, 의료제약 자본들에서 트럼프의 몇배가 넘는 자금을 모았다. (반면 트럼프는 제조업, 화석연료 기업과 카지노 자본들에서만 앞섰다)

 

그럼에도 올해 내내 미국을 뒤흔든 역사적인 반인종주의 시위가 있었기 때문에 그마나 바이든이 트럼프를 이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동안 미국 전역에서 백인까지 포함한 다양한 인종과 계층, 세대에서 무려 3000만 명이 이 시위에 직접 참가했고, 그것이 극우적 혐오정치의 영향력을 축소시키는 데 가장 결정적 작용을 했을 것이다.

 

바이든 또한 트럼프의 덕을 봤다. 강력한 반트럼프 정서 덕분에 바이든은 대다수 흑인들, 주요 노조들, 청년들, 여성과 소수자들의 강한 지지를 얻었다. 수잔 팔루디같은 페미니스트도 바이든을 공개 지지했다. ‘젠장, 아무튼 모두가 바이든에게 투표하자던 그레타 툰베리의 말은 너무 찜찜하지만 트럼프에 맞서서 어쩔 수 없다는 심정을 드러냈다.

 

미국의 많은 급진좌파들은 트럼프는 패배해야하지만 바이든도 지지할 수 없다는 애매한 태도를 취했다. 그 이유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너무 경직돼 보인 게 사실이다. 현재 미국에서 민주당의 모순된 성격을 봤어야 했다. 민주당은 바이든의 당이지만, 동시에 이번에 압도적으로 재당선된 오카시오 코르테즈와 스쿼드4(여성 유색인 사회주의자 하원의원 4)와 최초로 당선된 트랜스젠더 상원의원의 당이기도 하다.

 

지난 내부경선에서 버니 샌더스를 지지한 사람의 90%가 바이든에게 투표하겠다고 답한 상황에서 급진좌파는 누구와 함께 어떻게 운동을 건설할 것인지, 어떤 전술이 더 대중적이면서도 좌파적인 운동 건설에 효과적인지 봐야 했다. ‘사회주의자들은 걷는 것과 껌 씹는 것을 동시에 배울 필요가 있다. 그것은 후퇴가 아니라 계급투쟁의 공간을 넓히기 위한 전술적 타협이라던 좌파 이론가 레오 파니치의 지적이 타당했다고 본다.

 

물론 그것은 바이든에 대한 비판을 숨기지 않는 제한적 타협일 것이고, 당선이 분명해지자마자 바이든 정부에 맞선 투쟁을 시작하는 능동적 전술일 것이다. 2008년 대선 직후처럼 오바마가 알아서 잘 할 거라는 대중적 기대는 별로 없을 것이다. 백인 하층민들이 극우적 혐오정치에 빠져들지 않도록 하면서, 다인종 청년과 소수자들이 ()자유주의적 중도정치에 머물지 않도록 하는, 그런 좌파적 대안을 위한 투쟁은 이제 더 본격화될 것이다.

 

좌파 축출을 시도하는 영국 노동당 지도부

 

전지윤

 

최근에 영국 노동당의 좌파 지도자인 제레미 코빈이 반유대주의적 인종주의에 대해서 제대로 대처하지 않고 방치했다는 이유로 일시 당원 자격 박탈을 당한 것은 부분적 사실과 정치적 배경과 정략적 의도가 결합된 복잡한 문제인 것으로 보인다.

 

반유대주의적 인종주의는 유럽에서 분명히 역사적으로 너무나 심각한 문제였고 아직도 완전히 사라진 문제가 아니다. 사회의 일부에 존재하는 그런 혐오와 편견에서 노동당이라고 자유로울 수는 없다. 한국사회에 존재하는 여러 혐오와 편견에서 민주당은 물론 심지어 진보정당 당원들도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둣이 말이다.

 

분명 노동당에도 반유대주의적 인종주의를 가진 일부 사람들이 존재하고, 특히 SNS 시대에는 그것이 더 악화된 형태로 표출되고 과대 대표되는 경향까지 생기게 마련이다. 영국의 평등과인권위원회과 최근 발표한 보고서는 그런 조사 결과를 담았다고 한다. 영국의 평등과인권위원회는 한국의 국가인권위와 비슷한 기구이고 영국에 이미 존재하는 평등법은 한국에서 우리가 애타게 바라는 차별금지법과 비슷한 내용이기도 하다.

 

문제는 노동당의 키어 스타머 지도부가 이 보고서를 코빈과 당내 좌파를 단속하고 축출하는데 악용하려고 하는데 있는 것 같다. 성폭력 가해자가 지목되면 일단 자격정지를 시키고 조사해야 하듯이 당대표였던 코빈의 책임을 조사하기 위해서도 당원 자격 박탈이 정당하다는 논리인 것이다. 코빈과 노동당의 좌파는 반자본주의적이고 반제국주의적인 주장들과 그들의 급진적인 정책 때문에 보수당, 보수언론들, 노동당 우파의 집중적 견제과 합동 공격을 받아왔다.

 

그리고 이런 공격은 코빈과 좌파가 반유대주의를 부추긴다는 누명 씌우기와 마녀사냥을 중요한 무기로 삼아 왔다. 이것이 특별히 부각돼 온 이유는 영국 제국주의와 이스라엘의 동맹 관계, 친이스라엘 로비단체들의 입김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제국주의와 이스라엘을 비판하면서 팔레스타인과 아랍의 민중에 연대하는 모든 주장은 반유대주의라는 낙인이 찍혀 왔다. 제국주의와 억압에 대한 비판을 인종주의적 혐오인 것처럼 도치시켜서 여론몰이를 한 것이다.

 

그러나 코빈은 인종주의를 기반으로 이스라엘을 비판한 것이 아니며, 반인종주의적 좌파로서 노동당 안팎의 반유대주의적 요소에 대해 진지하게 맞서온 기록을 가진 사람이기도 하다. 하지만, 마녀사냥에서는 원래 사실이 중요하지 않은 법이다. 이미 지난 여름에도 노동당 좌파 지도자인 롱베일리는 이스라엘 비밀경찰의 잔혹행위를 비판하는 글을 공유했다는 이유로 반유대주의라고 비난받고 노동당 간부직에서 해임됐다. 롱베일리는 지난 당대표 선거 때 스타머와 경쟁했던 좌파의 대표 후보였다.

 

반제국주의적인 좌파를 무슨 위선적 인종주의자인 것처럼 불명예를 덮어씌우는 것에는 영국 기성언론들의 가짜뉴스와 왜곡보도가 중요한 몫을 했다고 한다. 반제국주의와 반유대주의를 구분하지 못하는 일부 극단적 노동당원과 지지자들의 언행을 부풀려 마치 코빈 지도부와 당전체가 문제였던 것처럼 왜곡하는 것, 진보와 개혁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위선자로 몰아가기, 혐오와 차별에 반대하는 논리마저 우파적 공격 무기로 이용하는 교활함 등은 한국사회에서도 많이 보던 양상과 수법이다.

 

오늘날 영국사회에서 반무슬림이야말로 아주 심각하고 중요한 인종주의와 혐오의 문제이고, 거기서 단지 일부 평당원들이 아니라 보리슨 존슨 총리와 보수당 지도부가 혐오와 차별을 선동해 온 장본인인데도, 별다른 비판이나 조치도 받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지금 코빈이 받고 있는 공격이 얼마나 모순이고 부당한 것이지 보여 준다. 결국, 지금 코빈이 받고있는 공격은 그가 상징하는 좌파적이고 전투적인 노선이 아니라, 다시 블레어 시절의 온건하고 타협적인 노선으로 노동당을 우경화시키려는 스타머 지도부의 방향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럼에도 거봐라 노동당은 대안이 아니다. 좌파는 헛발질말고 이번 기회에 모두 노동당에서 탈당해야 한다는 주장에 선뜻 동의가 돼지는 않는다. 그것은 노동당의 우파에게 당의 주도권을 넘겨주며 맘대로 편하게 평당원들을 데리고 과거로 돌아가도록 허용해 주는 것이 아닐까? 좌파가 자신들의 원칙을 지키며 변화를 추구하는 것만이 아니라 영국 사회의 급진적 변화를 원하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그 변화를 이루려고 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차별에 맞서서 돌봄을 위하여

 

전지윤


 



얼마전 노원중증장애인독립생활센터가 주최한 7회 스토리텔링 <11월의 가을이야기>에 갔다 왔다. 배재현 동지가 총연출을 맡아서 반년 가까이 준비한 행사였는데 아주 뜻 깊은 시간이었다. 장애인 동지들의 솔직한 경험과 감정과 생각이 담긴 생생한 스토리들은 하나하나가 흥미로웠다. 단지 스토리텔링에 그치지 않고 저마다 노래와 춤으로 자신을 표현하려는 시도도 멋졌다.

 

모든 내용에서 나오는 것은 차별없는 세상에 대한 기대였고, 서로 다른 이들을 이해하고 도우려는 마음이었다. 또 좌절하면서도 다시 일어서고 도전하면서 꿈을 찾아가려는 의지였다. 맨마지막 순서로 한 여성 장애인 동지가 그것을 무용으로 표현했는데 그 숭고한 의지가 힘겨운 몸짓과 마스크 뒤에 가려진 표정으로도 가슴 깊숙이 파고들었다.

 

배재현 동지는 총연출을 맡아서 계속 분주히 돌아다녔고, 막판에는 상황극에도 목소리 출연을 했는데 역시나 연기에 대한 소질과 끼를 드러냈다. 워낙 오래 준비하고 긴장한 탓인지 행사가 끝나고 홀가분하면서도 맥이 풀려보였다.

 

장애인 동지들이 서로를 돌보면서 인간다운 삶과 꿈을 만들어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더더욱 돌봄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코로나 1년은 많은 것을 드러냈지만, 무엇보다 돌봄의 결정적 중요성과 의미를 우리 모두 깨닫게 만드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제 있었던 돌봄전담사 노동자들의 파업도 그 의미가 컸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다른 인간을 돌보는 것은 인간에 대한 깊고 전면적인 이해를 필요로 하는 너무 중요하고 수많은 시간과 노력과 자원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그런 일을 하고 있는 돌봄전담사 노동자들에게는 고용안정과 충분한 임금과 노동조건, 인력충원과 공간과 시설 제공이 이뤄져야 마땅하다. 특권전문직 의사들의 파업보다 여기에야말로 정부와 사회의 더 많은 관심과 반응이 있어야 했다.

 

국가와 공공의 책임을 민간위탁과 시장화를 통해서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코로나 상황에서 수많은 부모들이 교사 역할까지 하고있고, 수많은 교사들은 부모 역할까지 하고 있고, 돌봄전담사들은 교육, 돌봄, 행정, 방역까지 다하고 있다. 이처럼 큰 부담 속에 진이 빠지고 지쳐가는 부모, 교사, 돌봄전담사들이 서로를 원망하고 서로에게 그 부담을 넘기고 싶어 하도록 부추기는 구조와 세력에게 진짜 책임이 있다고 본다.

 

그 점에서 충북지역의 전교조, 학교비정규직노조, 교육공무직본부가 공동으로 교사와 돌봄노동자들의 헌신과 희생으로만 지속되는 현재의 돌봄 정책은 중단되어야 한다. 인력, 예산, 공간 등에 대한 체계적인 지원과 고민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발표한 것이 참 반가웠다. 이런 연대를 통해서 돌봄에 대한 공공의 지원과 책임을 늘려야 한다. 소위 한국판 뉴딜은 그 무엇도 아니라 이런 돌봄을 중심으로 하는 전면적 사회개편이어야 한다.

 

잘 아플 권리와 건강에서 질병으로 중심의 이동

 

전지윤

 

얼마전 지역의 페미니즘 책읽기 모임 분들과 함께 조한진희 샘을 초청해서 강연을 들었다.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책과 마찬가지로 건강과 질병에 대해서 많은 도움과 고민을 주는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질병권이라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서 잘 아플 권리와 아픔을 돌보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시간과 환경 보장받아야 한다는 것, 건강하지 않는 상태를 비정상으로 간주하는 사회가 문제라는 것 등을 더 잘 이해하게 됐다. 이런 문제를 건강한 사람의 눈으로만 보게 만들고, 건강한 상태로 회복되는 것을 당연한 목표로 설정하게 만드는 것이 과연 타당한 것이지 묻게 된다.

 

장시간 노동과 열악한 노동조건과 악화하는 환경과 기후 등의 사회적 구조 속에서 누구든 크고 작은 만성질환이나 기저질환을 안고 살아가게 되는 데 질병을 삭제해야 할 배설물 취급하고 개인화하는 것이 어떤 효과를 낳는지 봐야 하는 것이다. 나부터도 사회운동 과정에서 얻은 목과 허리 디스크, 만성적 소화불량과 편두통에 오래동안 고생해 왔다. 그래서 돌봄조례나 단기공공요양원 등의 정책과 대안이 필요하다는 조한진희 동지의 주장을 크게 지지하고 공감하게 된다.

 

또 의사파업에서 드러난 의사들의 막강한 특권과 권위에 대한 비판을 들으면서는 건강에서 질병으로 중심축을 변화시켜야 하듯이 의사에서 환자로 중심축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의료사고 등에 대해서도 환자와 그 가족에게 입증책임과 부담을 전가하는 구조도 너무 문제가 많다는 생각이다.

 

코로나 방역에서도 한국사회의 건강에 대한 강박적 불안과 집착이 작용하는 것 같다는 지적에도 공감이 갔다. 한국의 코로나 방역이 외국의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상당한 성과를 보이는 게 사실이고, 그것에 기여한 분들의 노력과 공을 폄하할 생각은 조금도 없지만 말이다. 예컨대 인천학원강사가 그토록 개인적으로 비난받고 구상권 청구까지 당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의문과 안타까운 감정이 여전히 크다.

 

질병과 장애에 대한 우리 사회의 지독한 낙인과 편견은 검찰개혁을 둘러싼 충돌 속에서도 일부 느꼈던 부분이다. 정경심 교수가 뇌종양 진단을 받았는데도 어떤 배려도 용납하지 않는 태도들과 심지어 애꾸눈이라며 조롱하는데도 인권과 차별에 대한 공식적 지적이 별로 나오지 않는 양상은 조국몰이와 여성혐오만 작용했다고 보이지 않았다. 추미애 아들 무릎 수술에서도 거짓과 꾀병으로 몰아가며 휴식과 돌봄에 대한 언급은 찾기 어려웠다.

 

반면 조선일보는 이건희 사망에 대한 대대적 추모 보도 속에서 이건희 손녀의 외모를 품평하며 우월한 유전자를 언급했다. 이런 관점과 표현들이 누구의 시선으로 무엇을 중심으로 세상을 평가하게 하는지 물어야 한다. 나부터 자본주의의 위기나 무언가 비판의 대상을 질병으로 비유하며 설명하던 방식부터 돌아보게 된다.  


(기사 등록 202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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