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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과 주장264

한 사람을 생각한다 윤미래 이천 년 전쯤에... 어쩌면 그보다 오래 전에, 어쩌면 그보다는 좀 나중에 살다 갔던 ㅡ 아무튼 지금은 2000년 전에 살다 갔다고 전해지는 어떤 사람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그는 아마도 사생아였을 것이다. 로마 군인과 유대 여자 사이의 아이였을지도 모른다. 그의 어머니는 겁탈을 당했을 수도 있다. 율법보다 인간을 아낄 줄 알았던 그의 아버지가 그것을 알고도 그의 어머니를 기꺼이, 사랑과 존중으로 아내로 맞았을 수도 있다. 그는 '태어나지 않았어야 할' 아이였을지도 모른다. 인간 위에 군림하는 법과 권력이 그 스스로를 부정할 아이를 단죄하고 배제하였을지도 모른다. 그는 더럽고 역겨운 진창에서, 가축들이 어슬렁대는 가운데 태어나야 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몇 사람의 축복을 받았을 것.. 2017. 12. 27.
단결에 관한 짧은 고민들/ 도덕과 헤게모니 단결에 관한 짧은 고민들 윤미래 1. ‘본질적으로 같으니까 연대할 수 있다’는 입장도, ‘다르기 때문에 본질적 이해일치는 없다’는 입장도 동일성을 연대의 조건으로 전제한다는 점에서 똑같은 오류를 범하고 있다. 우리는 다르지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도 지금의 상황에서 아주 중핵적이고 구조적인 이해관계를 같이하고 있기 때문에 연대하는 것이다. 차이는 잘 다루었을 때는 오히려 연대의 힘이 될 수 있으며, 차이가 분열로 이어진다면 그것은 운동이 그러한 차이를 다루는 데에 실패했을 때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연대와 단결이 반드시 동일성을 필요로 한다는 관념이야말로 이런 실패를 낳는 가장 큰 요인들 중 하나다. 정치는 모순도 갈등도 없는 목가적 공동체를 만든 후 그것을 무한 확장해서 세계를 정복하는 기획이 아.. 2017. 12. 21.
비정규직 공무원에게 전국공무원노조가 손을 내밀자 성지훈(공무원노조 조합원) 비정규직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공무원 사이에서도 비정규직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특히 고용을 늘리기 위해 한 사람 분의 인건비로 두 사람을 고용할 수 있는 시간선택제 공무원 제도는 지난 박근혜 정부가 낳은 대표적인 적폐 중의 하나이다. 시간선택제 채용 공무원은 정부 지침상 차별을 금지하였으나, 근무시간대 선택 등 전일제 공무원에 비해 불합리한 차별을 받고 있다. 공무원이지만 공무원연금이 적용되지 않는다. 또한 하루에 절반밖에 일하지 못해 기본급 및 각종 수당을 전일제의 절반밖에 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며, 한명의 공무원으로도 대접받지 못하고 있다. 또 다른 형태의 비정규직 공무원인 임기제 공무원은 1년 단위로 재계약을 하며,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고용기간 5년을 넘길 때.. 2017. 12. 20.
장애인도 인간답게 노동하고 살아갈 권리를 보장하라! 이 나라에서 장애인은 인간답게 살아갈 권리를 빼앗겨 왔다. 가장 기본적인 노동권에서 특히 명백하다. 장애인 중에 무려 61.5%가 ‘비경제활동인구’이며, 고용률도 전체 인구 고용률의 절반에 불과하다. 월 100만원 미만 근로자 비율도 29.1%나 된다. 중증장애인의 경우 상황이 훨씬 더 심각하다. 2016년 장애인 취업자 88만 명중에서 중증장애인은 17.3%에 불과했다. 여성장애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경제활동참가율은 22.4%에 불과하고 절반 이상이 ‘월 100만원 미만’이다. 이처럼 장애인들의 노동권을 파괴해 온 장본인은 바로 이윤만 우선하는 자본이다. 2015년에 장애인 의무고용율 2.7%조차 지키지 않은 사업장이 78.3%나 달했고, 장애인을 고용한 기업도 저임금으로 착취하기 일쑤다. 문제는 정.. 2017. 12. 12.
이 세계는 얼마나 더 갈 수 있을까? 윤미래 샬러츠빌에서 충돌하던 나치와 반나치 시위대 이 세계가 지금처럼 문제없이 돌아갈 날이 과연 얼마나 더 남아 있을까? 트럼프가 당선되고 독일을 위한 대안이 의회에 입성하면서부터 나는 매일 혼자 물어본다. 더는 자본주의의 견고함과 요지부동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자본주의의 취약함을 두려워한다. 경제가, 먹고 사는 일이, 전처럼 계속될 수 없게 되면 사람들은 누가 가만히 있으라고 해도 절로 술렁이게 될 것이다. 극우에게도 좌파에게도, 듣지 않는 사람들에게 외쳐야 하는 답답함과 절망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급진적으로 내달리는 대중의 흐름에 얼마나 잘 결합할 수 있는가가 문제가 될 것이다. 깃발에 사회주의라고 쓰든 공산주의라고 쓰든, 운동이 상상하는 대안이 지금처럼 체제를 수정하는 것이나 아니면 기껏해야 .. 2017. 11. 30.
이론과 지식인에 관하여 윤미래 이론에 관한 객관주의가 왜 필요한가 이론이 필요한 것은 개인이나 개별 집단, 지역, 성별, 인종, 사회세력의 인식은 언제나 극도로 부분적이고 현상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근본적으로 모든 인간 인식의 한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도의 차이’가 있다는 것, 양적으로뿐만 아니라 질적으로도 차이가 있다는 사실은 굉장히 중요하다. 이론 생산은 일반적 보편적으로 통용 가능한 인식을 향해 적어도 한 단계의 질적 도약을 꾀하는 시도다. 이러한 노동을 통해 개별자들의 특수성들을 포괄할 수 있는 사회 일반의 인식이나 원리가 존재할 수 있게 된다. 이론은 개별자의 대립물로서 일반 사회의 존재에 조응하는 지적 구조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론은 또한 현상으로는 직접 드러나지 않는 이면의 .. 2017. 11. 23.
반올림 10년의 변화, 그러나 변하지 않은 삼성 이상수(반올림 상임활동가) 삼성 직업병 피해자인 한혜경 씨와 김시녀 어머님 올 해 11월 20일은 반올림이 만들어진 지 10년이 되는 날입니다. 반도체 전자산업 노동자들의 건강과 인권을 위해 활동해온 반올림의 10년, 변한 것이 많습니다. 황유미 님의 아버지 황상기 님이 처음 피해사실을 알려 온 후 10년 만에 삼성에서만 320분의 피해자들이 제보를 해오셨습니다. 그 중 118분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감추어져 있던 반도체 전자산업의 직업병 문제는 이렇게 참혹한 피해를 드러내며 우리사회에서 더 이상 감출 수 없는 문제가 되었습니다. 삼성직업병 피해제보 현황(2017년 10월 5일 현재) - 삼성전자 반도체/LCD 부문 피해자/사망자 : 236명/80명 - 삼성전자 피해자/사망자 : 263명/95명 - 삼성.. 2017. 11. 18.
육식의 편의 뒤에 가려진 채식의 존재를 보려고 노력하자 이 한 육식이 주류인 사회에서 채식은 너무 어려운 일이다 음식 메뉴를 결정하기 위해 “혹시 채식하세요?”라고 물어보는 질문에 “아니, 미쳤어요? 없어서 못먹는 게 고기인데”라는 식으로 대답하는 사람 너무 별로다. 나도 비건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딱 1주일만이라도 페스코로 살아보면 한국에서 채식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그리고 얼마나 비용이 많이 드는지 절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비거니즘은 사회 운동이기도 하지만 소수자성을 분명히 가지고 있다. 나도 올해 상반기에 약 2주간 페스코[닭고기와 생선까지는 허용하는]로, 두 달간 폴로[달걀, 가금류와 유제품까지는 허용하는]로 지낸 적이 있다. 그 기간동안 고기 먹으러 가자는 가족들이나 주변의 비운동권 사람들의 제안을.. 2017. 10. 13.
신고리 5,6호기 중단을 넘어 핵 없는 세상으로! 전진한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둘러싼 공론화가 진행 중이다. 시민참여단 478명이 약 3주 후 결정을 내릴 예정이다. 이는 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것보다 좋은 면도 있을 듯하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충분한 정보가 제공되고 토론이 활발히 이뤄진 끝에 결정이 내려진다면 보다 민주적이고 강한 동력을 가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 아쉬움이 더 크다. 우선 논의 구도 자체가 후퇴했다. 본래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은 ‘신규 원전 전면중단’, ‘신고리 5,6호기 백지화’, ‘2060년까지 탈핵’이었다. 그런데 정부는 취임 후 신고리 4호기, 신한울 1‧2호기 가동을 기정사실화했고, 탈핵 시기를 2079년으로 더 늦췄다. 결국 문재인 정부 집권기간 동안 핵발전소는 더 늘어나게 됐다. 토론은 신고리 5,6호.. 2017. 10. 1.
사드 배치 강행 - 대재앙으로 가는 문이 열렸다 전지윤 박근혜의 알박기에서 문재인의 못박기가 돼버린 사드 배치 강행은 한반도 전쟁 위기로 가는 길을 넓힌 중요한 역사적 분기점으로 기록될 것이다. 미국은 1994년에 북폭을 준비했다가 포기한 적이 있다. 당시 미국은 재앙의 규모가 어마어마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23년이 넘게 지난 지금 그 부담은 더욱 커졌고, 따라서 군사적 옵션은 ‘설마’라는 게 상식적 짐작이다. 하지만 23년 동안 미국이 무엇을 준비했는지 봐야 한다. 날아오는 미사일들을 막아낸다는 MD를 준비해 왔고, 사드는 그 꼭지점이었다. 또 실전 배치와 사용이 가능한 ‘스마트 핵폭탄’을 개발해 왔다. 다시 묻게 된다. 1994년에 미국은 아직 준비가 충분치 못하다고 본 것이 아닐까? 이제는 북한‧중국을 손바닥처럼 들여다 볼 레이더를 설치했고, 미.. 2017. 9. 11.
"이재용 5년? 다시 촛불을 들어야 할 것 같다” 이상수(반올림 상임활동가) [ 51호에 실렸던 글(http://rp.jinbo.net/change/43458)을 다시 옮겨서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준 필자와 에 감사드린다.] 이재용에게 5년 실형이 선고됐다. 핵심 공범인 최지성과 장충기에게는 고작 4년이, 박상진과 황성수에게는 아예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이재용에게는 형을 감해주는 ‘작량감경’이 없었다는 재판부의 설명까지 듣고 있으면, ‘작량감경’을 통해 이재용이 풀려날 수 있겠다는 불안감이 밀려오기도 한다. 이러려고 지난 겨울 1700만이 촛불을 들었나 하는 자괴감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에게 내려진 1심 판결이 징역 5년이다. 이재용과 한상균의 5년. 우리가 어떤 세상을 살고 있는지를 이보다 더 분명하게 보여줄 수 있을까? 사법.. 2017. 9. 2.
5년의 농성을 넘어 그 이상의 평등한 세상을 향해 새로운 투쟁으로 전환하는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광화문 농성- 5년의 농성을 넘어 그 이상의 평등한 세상을 향해 박철균(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선전국장) 18명의 영정 앞에 헌화하는 보건복지부 장관 광화문역 지하에는 5년 동안 계속되고 있던 농성장이 하나 있다. 2012년 8월 21일부터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이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 폐지를 외치며 농성을 하던 이 곳은, 어느새 광화문역의 일상 속의 하나처럼 5년 동안 자리 잡고 있었다. 사실 이 농성장을 만드는 데만 해도 10시간이 넘는 고초가 있었다. 경찰은 광화문 지하로 들어가려는 장애인의 휠체어를 가로 막았고, 심지어는 광화문 지하철역의 리프트 전원까지 꺼 버리고 계단을 기어서 가겠다는 장애인들도 계단에서 거칠게 제압하거나 휠체어에 탄 장애인을.. 2017. 8. 29.